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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BOYOUNG Mar 13. 2022

따뜻함을 느껴본 때가 언제더라?



  마냥 늘어지고 싶은 나의 주말 아침을 훼방 놓는 녀석이 있다. 우리집 강아지 ‘보리’다. 꼬물거리며 침대에 올라온 보리는 내 얼굴에 주둥이를 들이밀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나는 인상을 쓰며 뒤척이지만, 녀석은 포기하지 않는다. 보리는 내 손 냄새를 맡더니 손바닥을 핥는다. 보리의 주말 아침 인사가 내게는 귀찮지만, 보리에게는 중요한 일과이다. 성실도 이런 성실이 없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보리는 매 아침마다 나를 찾아온다. 나는 보리를 끌어안는다. 요새 부쩍 포동포동해진 보리는 따뜻하다. 참 좋다. 따뜻함이란 좋은 거구나.


  ‘얼죽아.’


  생각해 보면 나는 한 겨울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근데 나는 왜 따뜻함이 좋을까?


  따뜻한 밥. 따뜻한 햇살. 따뜻한 옷. 따뜻한 목도리. 따뜻한 마음. 따뜻한 경험은 참 많은데, 따뜻함에 대해서라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온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다. 허연 입김이 나오는 겨울 날 어묵 국물 한 모금. 단풍잎 젖은 가을비 내리는 날 집에 들어와서 샤워 할 때. 추운 날 나는 따뜻함을 감각한다. 따뜻한 온도에 대해서라면 목욕탕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온탕에 표시된 물 온도는 대개 38도 정도인데, 나는 약간의 뜨거움을 느끼며 탕에 들어간다. 36.5도 언저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우리 몸은 36.5도 쯤에서 노곤한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다.


  또 다른 따뜻함은 마음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일 년에 한 번 소중한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다. 그들에게 나는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느끼는 감정은 다른 게 아니다. 따뜻함이다. 이 따뜻함은 온도계로 잴 수 없다. 감히 숫자로 계량할 수 없는 따뜻함이다. 그러고 보니, 두 가지 따뜻함을 동시에 느꼈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이다.


  눈발이 흩날리는 어느 겨울날, 애인과 나는 데이트를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 데이트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종종걸음으로 걷는데, 애인이 내 손을 잡았다. 애인과 나는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미소 지었다. 나는 애인의 손을 내 주머니에 넣었다. 맞잡은 손은 따뜻했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걸었다. 참 따뜻한 겨울이었다.


  음. 얘기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아련한 추억에 젖게 되었는데, 따뜻함이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신비의 힘을 갖고 있다. 따뜻한 손난로. 따뜻한 장갑. 따뜻한 이불. 따뜻한 입맞춤. 따뜻한 사랑. 따뜻한 기억. 따뜻함은 살아 있음을 체감케 한다. 모든 따뜻한 것은 살아 있다. 나에게 따뜻한 기억은 애인과의 따뜻함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있다.


  어린 시절의 일이다. 작은 동네 슈퍼를 하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내 손에 쥐어주던 사탕을 나는 기억한다. 사월 해질녘의 따스함 같은 할아버지의 손결을 기억한다. 주름진 그의 웃음을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나는 그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 따뜻함과 살아있음에 대하여 아주아주 거대하게 생각해보면, 우주가 떠오른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 지구에 우리는 있다. 우리는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걸 통해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하나의 몸처럼 정교하게 돌아가는 태양계에 속한 우리는 천천히 ‘순환하고―순환되어지고’ 있다. 이 흐름은 마치 우리 몸의 혈액순환과 같은데, 이 흐름 안에서 우리는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우주 안의 것. 모든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전제하게 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따뜻함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보리를 끌어안고 보리의 부드러운 털을 매만진다. 해가 쨍쨍한 주말의 오전. 따뜻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장모 닥스훈트.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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