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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21. 2023

어떤 동거

 여동생 가족이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해외여행을 떠났다.  


모두는 각자 회사의 업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새에서  시간 한 줌을 겨우 구했다. 그들은 마침내 A380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훨훨 날아올랐다.  그 덕분에 나는 아주 무거운 짐 하나를 떠안게 되었다.


 동거, 귀하디 귀한 애견 루디와 함께 살아야 했다. 

 

 어렵고 피하기 힘든 부탁을 무겁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아이의 입양 때부터 함께 했던 가족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애견 케어의 도우미가 아니라 최종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글과 자기 자신의 실존 사이에 커다란 괴리를 안고 있는 것처럼, <나도 애견인>이라는 말과 <견주>라는 사실 사이에 벽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열흘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에서 솔직히 제대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루디는 원래 주인과 침대를 공유하는 개였다. 

 평소 개는 마당에서 키워야 한다는 나의 소신을 대쪽 가르듯 쪼개 버리는 이 참담한 동거는 어느 순간 분명 내가 절규하며 고통스러워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첨언하자면 루디는 하루 두 번 산책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전 실내 공놀이 한 시간. 취침 전에 밖에 나가 오줌 누이고 침대에 동침하는, 그렇게 안 하면 에너지가 남아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지랄견 중의 한 종일뿐 아니라 황제의 개였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골집에 들락 거리는 네 마리의 새끼 길고양이 목도리, 막내, 랑이, 퓨마 그리고 얘들 엄마 스레트, 아빠 흰둥이 였다. 그중에 목도리는 이 집이 마음에 들어  아예 전세로 눌러앉았다. 루디는 전생에 고양이가 모두 부인들이었는지 모두에게 적대적 이었다. 


 인생의 열흘은 삶의 뺄셈이네, 가족들에겐 걱정 말라 거짓말하고 속으론 대략 난감해하며 망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까다로운 견공과 동거하는 조건으로 하루 백 불의 보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 엉뚱한 제안에 동생은 가타부타 대꾸도 없이 마구마구 웃기만 했고 정말 농담이었는데 여행전날 통장에 모르는 돈이 금되었다. 쟤는 어릴 때부터 장난과 진짜를 구분 못하는 <진지 색맹>이라 이젠 내가 난처하게 생겼다. 돌아오면 재송금해야 한다.


 동생 가족은 낯섦을 찾아 떠났고 나는 동거라는 낯섦을 맞이했다.  


 가족과 헤어진 첫날밤, 루디는 내 침대 안쪽을 엉덩이로 파고들었다.


 " 개는 말이야 어쩌면 우리처럼 시간 계산을 못 할지 몰라. 그냥 주인이 안 돌아오면 '좀 늦네'와 '금방 왔네' 두 가지밖에 모를 거야. 그러니까 하루 없으나 열흘 없으나 이 애들은 똑같다고 보는 거지. 너무 걱정하지 마. 비행기 타고 마취당하는 것보단 이게 낫지. "  


수의사 설 채현이 아니라 그런지 동생은 역시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침대 속에 들어온 루디는 보호자 없음을 눈치챈 건지 분명 외롭고 불안해 보였고 나 역시 열흘간 보호자 역할이 불안해 보였다.




 알라딘에서 우연히 찾은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늑대새끼인지 모르고 강아지를 분양받았는데 늑대로 성장한 늑대개를 죽을 때까지 책임진 이야기가 나온다. 늑대 브레닌은 철학교수인 저자와 십 년을 같이 산다. 그들은 미국,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옮겨 다니며 동거한다.  그는 늑대와 교감하며 동거의 공간을 제한하는 사회 제도권의 울타리를 넘나들고 늑대개와 동등한 생명으로 삶을 나누며 동반자로 살다 마침내 죽음 앞에서 헤어진다.

 이 책이 실화여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평소 나는 마음이 헛헛할 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톰행크스나 <그래비티>의 샌드라 블록을 보면서 삶의 진중함을 다시 채우곤 한다. 그래서 영화 몇 개는 비상용으로 항상 노트북에 보관했다. 이처럼 내 책상에도 비상용으로 <줌파 라히리>나 <로맹가리>의 작품 몇 권을 보관하는데 늑대개 브레닌의 이야기 <철학자와 늑대>도 그 자리에 응급약처럼 채워놓았다. 나도 저자처럼 우연히라도  진도견 블랙탄이나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늑대개를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 녀석, 집안식구 중에 가장 나만 무는 소형견 루디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교통사고로 잃은 애견을 대신해 루디를 입양했을 때 어머니는 "두 달짜리 쥐새끼만 한 녀석"을 데리고 왔다 표현했다. 쥐새끼만 , 자다가 몸을 뒤척이 혹시 깔리지 않을까, 죽은 애견 때문에 아기 때부터 옹야옹야 키우던 이 녀석은 침대에서 그렇게 자랐다. 사랑스럽고 간혹 사나 늑대같이 무서운 아이에게 무한 책임과 반려를 맛본다.


나는 수감자처럼 하루하루 달력을 엑스자로 지웠다.


매일 두 번 산책도 힘들지만 에둘러 집에서 배변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눈치껏 집 앞에 나가 처리하고, 시골길을 산책할 땐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나 작은 트럭 앞에 당황하며 아이를 끌어안는 일이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동네길에서도  배변을 치우면 예의 없이 빵빵거린다. 조금 기다려 주면 안 되나? 자기차에 똥 묻기 싫 텐데...           


집 잔디 마당에 풀어놓으면 이 애는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브레이크가 없다. 고양이 사냥에 나선다. 아, 저 발에 먼지랑 흙 묻은 거는 어쩌나. 뒷마당 텃밭에 마늘 양파를 마구 짓밟고 막 자라기 시작한 콩과 대파도 밟아버린다.  풀어놓으면 안 되겠다. 나는 집 에서도 아이를 묶어 추가 산책을 한다. 아~ 운명이여. 오후 산책을 마치면 앞마당 처마밑 그늘 내 무릎에 앉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해 떨어질 때까지 안고 있으라고 눈으로 말한다.  아, 운명이여...


원래 내가 책상에 앉아 일하는 시간은 새벽네시에서 오전 아홉 시 까진데, 그래야 미국하고 시차도 맞아 업무 통화도 하고 하는데  내 모든 리듬이 파괴되었다. 기다리는 사람 한 명 없겠지만 브런치 글도 못쓴 지 오래다. 게다가 이 아이는 성악을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방송에 성악 한두곡은 들어있는데 그때마다 끄라고 야단치고 늦게 끄면 늑대소리를 낸다.  요즘은 애랑 하루 두 시간을 매일 걷다 보니 잠도 부족하다. 비타민 D도 과잉 생산되는 것 같다. 섬기느라 몸과 마음이 시들어다.






결국 터질게 터지고야  말았다.    


평소 새벽에 일어나면 동이 틀 무렵 고양이 여섯 마리가 현관 앞에 도열해 있다. 이 시간에는 내가 습식 캔 사료를 건식사료 위에 토핑으로 얹어 주기에 아이들이 가장 기뻐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저녁을 오후 네 시경 주기 때문에 공복시간이 길어서 냥이들에게 새벽은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루디는 새벽에 쉬하고 고양이 밥 주는 이 시간을 못 견딘다. "왜, 재네들 밥을 주냐"는 항의 같다. 물론 깡통 따면 고소하게 등장하는 닭가슴살, 연어 냄새가 나서 질투에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 왈왈왈알" 루디는 투견처럼 헉헉거리며 현관문 실내에 세워둔 가림막을 해체하려고 두 발로 날아 차기를 했다.


" 나비야~"


"왈왈왈왈"


순식간이었다.


오늘은 동생가족이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 날이고 오후에 도착해 내일이면 무거운 책임의 갑옷을 벗어던지는 축복의 날이었다.  나비들 밥 다 주고 흐뭇하게 문을 여는 순간, 천년을 기다려온 괴수 한 마리가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정말 순간이었다. 얼마나 빠른지 번쩍 섬광이 스치듯 루디는 고양이를 공격했다. 나비들은 더 빨랐다. 여섯 마리가 순식간에 공중 분해되듯 "펑"하며 도망쳤다. 괴수는 나비들 밥그릇을 뒤집어엎어 버리고 사료를 바닥에 팽개친 후에 앞마당에서 추격전 시작다. 수컷 흰둥이는 루디와 몸무게가 비슷하고 덩치도 큰데 도망간다. 녀석은 어디서 맨날 싸우고 상처가 많았는데 개와 교전은 처음인가 보다. 뚱뚱한데도 요리저리  잘 도망간다.


 이번에는 새끼들이다. 냥이 새끼들은 담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벽에 기둥을 받쳐 주었고 아이들은 그곳을 통해 오르내렸다.  루디가 추격했다.

 

" 루디얏!!!!"


경고와 놀람이 교차된 외마디 비명.


 담밑에도 비상구로 고양이 구멍을 해놓았는데 루디가 쫓아 나갈까 봐 우선 그것을 막아야 했다.  루디는 전과가 있었다. 사람 없던 제주 해변에 잠깐 풀었다가 도주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먹은 적이 있었다. 만약 개구멍으로 쫓아 나가버리면 저 아이는 찾을 길이 없다. 블록으로 구멍을 막고 뒷마당으로 달려간 루디를 잡으러 갔다.


뒷마당에 나비 한 마리는 목이 물려 축 늘어진 채 루디 입에 물려  있을 거란 생각이  몇 초간 머리 스쳐 지나갔다.


뒷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아...





네 마리의 나비 날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담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하던 아기들이 날아올랐다.

기적이었다.

매트릭스 영화 같았다.


위기는 기회를 만드나?

 

나비들은 전부 날아, 담장 위로,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뚱뚱한 루디만 날지 못하고 마늘과 양파를 짓 뭉개며 냄새를 쫓아 땅을 헤집고 다녔다.


" 너, 이리 와, 이노무 자식"


루디는 잡히질 않았다.  실내에서 뛰쳐나왔으니 목줄도 없다. 이 아이 체포하느라 삼십 분은 애먹었다.





사고는 수습되었고 동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드디어 글을 쓴다.






로맹가리는 그의 책 "흰 개"에서 나처럼 우연히 자기 인생에 뛰어든 순하고 충실한 개 바트카가 흑인만 보면 공격하는 경찰견이었음을 알게 된다.


      “개한테 이런 짓을 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어……. 바트카를 떠올린 건 아니었다. 우리 모두를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한 거지? 대체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지? 내게 “사회”라고 답하지 말아 달라. 우리 뇌의 본성 자체가 원인이다. 사회는 진단의 한 요소일 뿐이다.” (163쪽)


우리의 싸움은 다름을 공격하는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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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를 새끼 때부터 함께 키워보기...


(스~, 움직이지마, 털 다 말릴때 까지 참어.  너 그러니까 고양이 앞으로 물거야 말거야? 가만있어~)


https://youtu.be/I5NuCsaVE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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