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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23. 2023

홀로

견공 루디 군을 돌려줄 전날 새벽, 개와 동침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던 나는 침대위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녀석을 보았다. 참 신기 하기도 하지, 곧 헤어져서 그런지 잠든 녀석이  사랑스러웠다. 그래, 처음이 어렵지 낯선 그 처음을 겪고 나면 생각은 바뀔 수 있어. 낯선 것은 항상 덤으로 묻어온 두려움 때문에 쫓기는지도 몰라.


"개를 반납합니다"


 미국에서 자주 이용하던 렌터카를 반납할 때, 무척이나  꼼꼼하게 살펴보던 Hertz 여직원이 떠올랐다. 그녀는 금발에다, 약간 섞인 백인 아줌마였는데 무척 친절하다가 업무 집중하면 정색을 하고 옆에 있는 나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난 항상 차를 빌릴 때 꼼꼼히 체크한다. 어디 어디 흠집이 없나.


" 자, 여기 보세요. 얼굴?, 이상 없죠?. 다리? 튼튼합니다. 한번 토했는데, 문제없는 것 같고 입을 닦으면 또 물까 봐 입은 못 닦았습니다. 냄새 쪼끔 납니다."


 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보호자에게 미쳐 난리 친다. 뽀뽀에 몸부림에 왕복 달리기까지.


그래, 저래서 개를 키우나 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부부가 서약하는 걸 개가. 하긴 항상 저렇게 일관된 자세로 좋아해 주는 여자사람, 남자사람은 없지...


나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래 어때? 내 나라에 다녀온 소감이?"


조금 거만하게 웃기는 소리라고 하자,

 

"내 나라? 이 양반이 우리나라 머무는 걸 허락해 줬더니, 지금 자기 나라 자랑스럽나?"


만약에 동생 가족이 노르웨이라도 다녀왔으면 배가 아플뻔했다.  미국여행이라 다행이다. 조카는 어려부터 유학해 미국에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오랜만에 다녀온 둥지를 좋아했다. 그녀는 인천공항 내리는 순간 아쉽다고 했다. 한국 대기업에 이미 자리 잡은 조카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난번 미국회사 면접 잘 보고 붙었어야지. 다음 기회 되면 유럽으로 가라. 나도 묻어서 여행 좀 하게"


조카의 아쉬움과 달리 여동생은 귀한 경험 하나를 물어왔다.


왜, 우리 사막투어도 하고 도시도 다니고 했잖아. 그런데 도시는 안 부러운데 자연은 부럽더라. 딱 자연 한가운데 서 있는데 막 힐링이 되는 거야. 너무 지치고 빠듯해서, 시차적응도 안되고 하는데, 설레고 감사하고 행복하더라. 역시 자연은 위대해. 같은 시간인데 시간의 결이 달라지는 거 있지?


" 자, 개를 가져가시오"


진지할 때 산통깨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래 여행은 늘 우리에게 시간의 뒷모습 보여주는 기술이 있다.






여행 후일담 때문에 오래전 그때가 떠올랐다.


미국 이민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인가,  동부에서 서부 갈 일이 생겼다. 그때는 혈기가 왕성해 비행을 좋아했다. 나는 비행기를 두 번 타고 싶어서, 지금은 무조건 직항을 선호하지만,  갈아타는 여정을 선택했다. 첫 번째 비행의 승객 대부분은 외국인이었고 동양인은 나와 저~쪽에 계신 한국인 같이 생긴 아주머니 한 분뿐이었다.


 비행기는 작았고 흔들림이 많아 무척 재미있었다. 경로는 디트로이트에서 한번 내려 갈아타는 비행이었고 무엇이든 그 처음은 설레고 두려웠다. 그 두려움의 크기가 작으면 긴장이고 건강한 긴장은 또한 짜릿했다. 대중 앞에 강의할 때도 그 긴장은 항상 설레게 따라다녔다.  나는 운동할 때도,  스포츠 중계 볼 때도 그 날것의 떨림을 무척 즐긴다.


그 처음 낯선 것은 만나는 즉시 소멸되어 익숙함이란 낡음이 되고, 그래서 나는 항상 처음 순간을 좋아했다. 운동화도 새로 사면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는 순간이 설레, 침대옆에 두고 잤다.  나는 한번 사면 오래 쓰는 명품보다 자주 업그레이드 하는 물건을 선호했다.  요즘 같이 대형 스크린이 보편화되기 전에도 우리 집 TV 크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지금도 있는데 고칠 필요가 없어 그냥 가지고 산다.


그날 비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비행기 환승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좀 심한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 나는 여행준비 매우 철저히 했다. 비행기 기종은 물론 경유하는 도시 정보도 검색해 머리에 완전히 정리했다.


 그러나 머리가 하얘지던 그 처음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순조로운 첫 번째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내렸을 때  어찌 된 일인지 내려서 공항실내로 들어가는 길이 통로 몇 군데를 지나며 제법 오래 걷게 되었다. 내 생각엔 나가자마자 승객들과 섞여서 연결 편 비행기를 바로 탈 줄 알았는데 꾸불꾸불 통로를 지나  공항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확 다른 세상이 들이닥쳤다. 얼마 안 되는 승객은 하기해서 각자 제 갈길로 갔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혼자가 된 느낌?

 

낯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 분주한 발걸음들이 오가고 있었다. 긴장하면 머리가 하얘지는 내 지병, 이것이 찾아왔다. " 어디로 가지?" 당황스럽고, 누구에게 물어볼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지금생각하니 갈아타는 탑승구가 꿰 먼 곳에 있었고 나는 기내가방을 끌다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 익스큐즈미?"


 결국 나는 근처 다른 항공사 직원에게 표를 들이대며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뚱뚱한 흑인 직원은 친절하고 빠른 영어로,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나 나의 마지막 대답은 "땡큐"라 하고 "어디로 가라는 거야?"며 이리저리 헤매 다녔다. 하지만 마침내 얻어걸려 탑승구를 찾았다. 그 순간 비행기는 마지막 탑승을 끝내고 있었다.


"저기요"


갑자기 뒤에서 한국말이 나를 불렀다.



" 네?"


" 혹시 LA 가시는 거죠?"


" 네. 그런데요."


" 아, 맞구나"


 그 아주머니는 동부에 사는 아들을 방문했다가 LA 사는 친척을 만나고 한국 가는 비행기를 다시 탈거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은 공항에서 헤어지며 저어기 한국사람 같은 분이 있으니 모르면 그분 따라가라 했단다.  내가 헤매는 동안 아주머니도 나를 따라온 거다. 내가 다른 도시로 가면 어쩌려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왔다. 암튼 나도 아주머니도 얻어걸렸다.


졸지에 나는 보호자가 되었다. 기내 자리에 여유가 있어 승무원에게 좌석변경을 부탁하고 아주머니를 옆자리에서 챙겼다.  아주머니는 일행이 생겨 두려움이 가셨는지 말이 많았다. 비행기 안에서 옆의 상대가 말을 많이 할 때, 나도 옛날 한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원어민 교사로 처음 입국하는 미국인에게 주제넘게 엄청 떠들었었다, 그거 참 처치 곤란하다. 안 들을 수도 없고 말을 끊을 수도 없고...


아주머니는 LA 공항 도착해서도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비행기에서 안면 트니 친밀감을 느끼는가 보다. 결국 그분의 친척과 상봉했고 그 순간 아주머니는 인사도 없이 훌쩍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분은 분명 무엇에 집중하면 앞엣것을 잊어버리는 병이 있을게다.  나와 가까운 한국 명문대 출신에 미모가 뛰어난 유학생 한 명도 결혼하고 젖병을 수십 개나 잃어버렸다고 남편은 하소연했다.

 " 이 친구는 언젠가 분명히 식당에다 애기 놔두고 나올 거예요"


" 어? 애기 어디 갔지?"


젊으나 늙으나 깜빡거리는 사람.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순간적으로 심각하게 느낀 생애 한 순간,

단체로 무리 지어 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내 갈길을 찾아야 하는 잠시의 공포...






봄이 오기 얼마 전 여기 한국시골에서 진풍경을 목도했다.  꽤나 몸이 큰 철새들이 고향으로 떠나기 전 집단으로 비행연습 하는 장관이었다. " 꽥 꽥" 우두머리 신호음 같은 소리에 대형을 갖추고 낮게 나는 새떼 장관이 장엄해서 깜짝 놀랐다. 저들이 멀리는 10,000km 까지도 이동한다는데 혼자 못 가겠구나...


어쩌면 한국인도 철새처럼 집단으로 살고 미국인은 개인이 홀로 산다.


 50개 주가 각자 다른 나라 같고 미국이라는 한 국가로,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순수혈통으로 서로가 서로를 가족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자꾸 머릿속에는 우리도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세 개의 주가 모여 한나라를 이룬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제 시대는, 각자이며 하나로 사는 때 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경계에 홀로 산다.


홀은 가끔 짝보다 편하다.






https://youtu.be/3 DMQc76 GfzQ? list=RD3 DMQc76 Gf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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