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행복할 것 같은데 2박 3일 정도 지나면 시골걱정이 눈앞을 가린다.
" 잔디는 목마르지 않을까?"
" 우리 집, 길 고양이는 가득 채워놓은 사료 다 먹었겠지?"
" 어항에 열대어는 물이 줄어 말라죽진 않겠지?"
허겁지겁 그렇게 다시 돌아오면 잠시 좋다가, 고요한 일상이 또다시 갈증을 낳는다. 이는 철새 같은 내 이소와도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일정시간을 보내면 미국이 그립고, 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한국이 그립다. 사실은 혼자 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국은 더 이상 들어올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 동생이 마련한 시골집, 게스트 하우스 덕분에 나는 한국행 명분이 생겼다. 너무 편하게 이곳 생활을 즐긴다. 인터넷 덕분에 어디에 있던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장기간 혼자 있는 시간을 공적으로 얻어낸 것이다.
혼자
어려서부터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무리에 섞여 있으면 즐거운 것 같아도 에너지가 급히 소진되었고 혼자 있을 때 충전된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 한때 미국에서 친한 선배를 집에 초대했다. 와글와글 놀다가 먹을 거 다 먹고 대화가 소진될 무렵 선배는 TV리모컨을 눌렀다. cNN이 흘러나오자, 모두는 말없이 tv를 시청했다. 그때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 선배 이제 그만 가시죠?" 그 말이 화근 되어 우리는 몇 주간 소원하게 지냈다. 그때 이후 아내는, 손님한테 "그만 가라"는 말 좀 제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타인에게 친절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타인에게 맞추느라 말이고 행동이고 늘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그만 가시라는 말만 빼고) 오랜 외국생활 끝에 한국을 들락거리다, 호의적인 태도가 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태도를 바꾸었다. 어쩌면 나는 젊은 시절 한국에서 겪으며 배워야 할 삶의 태도를 모르고 살았다.
갑의 기초가 침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불편하지만 무뚝뚝한 태도를 하게 되었다. 상대가 내 생각을 모르게 하는 것, 이것이 한국생활의 두번째 기초라는 것도 이해하자 내 삶의 태도는 두 개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유로운 원래 내 모습, 또 다른 하나는 말없이 무뚝뚝한 모습. 이중생활은 너무나 불편했고 오히려 혼자가 편했다.
서양인은 좀 단순하고 우리는 너무 복잡해.
미국에 들어가면 옷을 갈아입는다. 영어로 속옷을 갈아입고 생각은 좀 단순 솔직 가볍게 입고 익명의 타인과 스스럼없이 노출한 채 대화한다. 여기 한국은 뭐랄까 갑옷을 입은 느낌이다. 옛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마음 열기 힘들다. 속으로 평가받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도시에 가면 나는 뷔페 같은 회전초밥집을 자주 간다.
날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뷔페는 종류가 많아 즐겁다. 미국에도 동네에 흔한 Golden Corral이나 Ryan's 같은 뷔페를 좋아했다. 한국이야 뷔페 가면 혁대 풀고 목숨 다해 먹지만 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적당히 먹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렇게 변했다. 섭식에 욕심이 사라지자 미식으로 바뀌었고 미식은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회전초밥은 품질이 조금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하다.
미식가가 되자 먹을 때 대화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시간을 마주하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축복이라는 디저트도 같이 먹게 되었다.
전화는 시간을 마주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전화를 할 때 상대가 일을 할 수도 있고 몰입하기 힘든 상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눈치가 백 단인 나는 음성과 태도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굳이 시간을 공유하기 힘들면 간단히 안부를 나누고 에둘러 전화를 끊는다. 시차 때문에 국제통화는 서로의 기분까지 공유하기 힘들다. 그나마 시간을 함께 마주하려면 나는 문자로 먼저 통화여부를 타진한다. 그러면 한결 낫다. 서로 나눌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초밥 먹고 비린입을 달래기 위해 옆에 있는 커피점을 찾았다.
점심시간엔 허기와 지루함에 지쳐 빌딩에서 뛰쳐나온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내 테이블 지근거리엔 담소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나는 이 좁음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미국도 좁고 혼잡한 도시가 있지만 나는 자유를 찾아 날아갔기에 널찍한 중소도시에만 주로 살았다. 시카고도 널찍한 곳만 찾아다닌다.
에스프레소가 목구멍에 용암처럼 스멀스멀 넘어가며 쓴맛이 목젖에 부드럽게 감길 때, " 뭐야. 설탕 넣었나 봐" 불쾌한 단맛이 나중에 찾아들었다. 주인은 손님의 동의 없이 그만 설탕을 넣었다.
슬픈 단맛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어 문득 내가 사람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는 발상을 만났다.
사람의 갈증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람이 참 신선하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처음순간은, 돌아가는 회전초밥 접시에서 처음으로 연어 접시를 움켜쥘 때와 비슷하다. 운이 좋아 연어 뱃살을 만나면 내 입에서 뇌까지 1초도 안 걸려 황홀경에 빠진다. 독사의 독도 이렇게 퍼지겠지? 처음 마주한 사람도 비슷하다.
맛이 온몸에 퍼지면 우연히 보게 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마츠시게 유타카로 빙의하여 연기한다.
" 흠, 이 맛은 뭐지? 뭐랄까 알래스카 냄새? 크릴새우를 먹고, 아니지, 양식장 일거야. 암튼 이 맛은 곰도 느끼는 바로 그 맛일 게야"
오랜만의 새로운 맛.
요즘은 새론 사람 만나는 상큼한 맛이 그립다.
낯선 풍경, 처음, 익숙함으로 변하기 직전까지의 그 강렬함은 인생 몇 안 되는 즐거움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봄의 연초록이 그렇게 새롭다.
늘 가을단풍, 낙조 등 꺼져가는 것들에만 매력을 느꼈는데, 마당에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면서 연초록의 켜지는것들이 잔인하게 아름답다 느꼈다. 잡초를 벌레 취급하다, 어쭈구리 지식이 생겨, 생태계 일부로 받아들이자 손바닥 만한 빽 야드 텃밭이 관행농법에서 유기농법으로 바뀌더니 잡초들의 연초록도 그렇게 아름다워 미칠 것만 같았다.
편견은 그래서 독초다.
새로 부활하는 식물은 사람에 대한 갈증을 조금 이나마 식혀준다.
'아이고, 양파 좀 봐. 어마어마 하구만."
옆집 할아버지가 담 너머 얼굴을 비쭉 내밀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평소 말수가 적다 동생이 다녀가면 말이 많아지는 이웃 노인이다. 동생은 미국여행을 다녀오며 옆집 선물도 챙겨 왔다.
"우리는 유기농이고 영감님은 비료를 처발라서 그래요"
속으로만 말했다.
" 종자가 다른가 벼?"
" 아뇨? 장날, 읍에서 산 모종인데?"
발칙한 상상을 했다.
옆집 시골 노인부부 대신 유럽에서 들어온 파란 눈의 남자가 한국부인과 옆에 살면 어떨까? 주말에는 미국 이웃처럼 음식 한 접시 만들어 나누며 바비큐도 하고 와인에, 담소에. 아, 좋다.
이웃은 그렇게 일 년만 살고 떠나야 해. 익숙해지면 재미없으니까.
그러고 나서 혼자 사는 시인이 이사와. 그리고 문학을 논하는 거지. 막걸리 한잔 놓고 함께 시를 지으며 살아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