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시작’이다
어린 시절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흥행했었다.
당시 유행어와 같았던 이 문장을 입에 한두 번 안 올려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30년 정도 지난 여러분.. 과연 그랬나? 정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었나?
일단 필자는 그런 것 같다. 행복이 반드시 성적 순은 아닌 것 같다.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하면 인생에서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공포감이 사회로부터 머릿속에 주입되었지만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성적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생활에서의 시작이 우월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성장 속도도 빨라 사회생활 시작하고 5년? 10년? 정도는 좋은 대학 나온 친구들이 누구보다 좋아 보이는(?)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사실 그때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라는 게 월급 조금 더 많은 거? 또는 승진 좀 빨리하는 거 정도 아니었나?
그런데 그게 행복의 전부였던가?
누구나 아는 대기업 다니던 친구가 회사 나와서 사업하다가 하루아침에 어찌 되었다고..
사랑하는 이성과 결혼했는데 그분이 사기꾼이었다고.. 배우자와 너무 안 맞아서 불행해하다가 어찌 되었다고.. 자식이 어찌 되었다고.. 보이스 피싱당했다고.. 부모님이 어찌 되셔서 결국 어찌 되었다고.. 잘 나가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어찌 되었다고.. 어찌 되었다고..
세상에 불행할 일이 한두 가지였던가? 공부 잘한다고 그 모든 불행이 피해 가던가?
그 모든 불행 앞에 공부 조금 잘하던 게 뭔 소용이던가?
필자는 언제부턴가 “인생 정말 자알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자식들 결혼할 때 집 한 채씩 해주고 자동차 사주고 뭐 이런 게 행복?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자 되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 이 정도면 행복하겠지 하는 정도의 소위 부자들을 몇몇 만나게 되면서 결코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47세 되는 이 시점에 내가 생각하는 ‘한 평생 잘 살았구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리 부부 건강하고 자식들도 건강하고
우리 부부 7-80세 돼서 병원 갈 때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자식 앞길 막지 않도록 빚 안 남기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 손잡고 가끔 맛난 외식 즐길 수 있는 정도?
이 정도면 너무너무 감사하고 죽는 그 날 잘 살았구나.. 하면서 편히 눈 감을 것 같다.
인생의 목표다.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정말 꿈같은 말년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이제 20km 구간 지났을까? 30km 구간 지났을까? 앞으로 어떤 역경이 찾아올지 모른다.
50세를 앞둔 이 시점에 나는 우리 친구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행복은 재산 순인가?
친구들아, 우리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서 슬기롭게 살아보자.
우리의 행복이 꼭 성적 순이 아니었던 것처럼 남은 인생도 꼭 재산 순은 아닐 것이다.
물론 공부를 전혀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재산도 전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끝도 없이 재산만 쌓는데 인생을 허비하지는 말자. 우리의 불행을 재산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은 재산 말고도 어마 무시하게 많을 것이다.
우리 그걸 찾도록 하자.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할 그걸 찾아주도록 하자.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