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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Jun 13. 2024

페르소나를 쓰기 싫을 때

사회생활이 너무나 피곤할 때


나로 사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떤 양육환경이 날 그렇게 길러주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일에 자신이 있었고

못하는 것이 좀 있다 해도 개의치 않았다.


원하는 성취가 있으면

열심히 노력을 했고

나의 노력이 나를 배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30대의 노력과 운으로

남이 크게 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는데


40을 마주하는 시점에서

또 다른 나를 마주했다.


바로 초등학교 5학년의 엄마.




5학년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아주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많지 않다.


나는 뭘 하든 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이 넘치게 어린 시절을 보내왔는데


나의 5학년은

나는 잘하는 게 별로 없다는 의기소침한

그런 마음이 가슴에 가득한 요즘이다.

그걸 알게 된 나의 마음도

같이 움츠려든다.




이미 사회에서 자리 잡은 나는

별로 주위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주어진 일만 잘 해내면 된다.


그러나 농구맘으로서의 나는

새내기다.


농구를 적당히 잘하지만

뛰어나게 잘하지는 않는 아들이

뛰어나게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가면


나도 그 뛰어나게 잘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같이 주늑이 들어간다.


대치동 학원정보도 모르고

간식거리를 센스 있게 지퍼백에 싸가지도 못했고

엄마들 먹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준비하지도 못한 나는

애써 미소라도 띄우며

아휴 감사해요 인사를 하며

방석이 가시방석이다.


골대 밑에서 패스를 받았는데

슛을 쐈는데도!

공이 안 들어가면….


내 마음도 정말

제대로 무언가 딱 맞는 곳에

들아가지질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나대거나

나설 수 있는 것도 없다.

나는 그저 농구맘 페르소나일 뿐


내가 변호사건,

친구들을 잘 웃기는 재미있는 사람이건,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장인이건


다 상관없고

그냥 농구 실력이 조금 부족한 초5의

농구맘. 그뿐이다.




이럴 때 그 페르소나를 가지고

더욱 친화력 있게,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노력해 봐도 되련만,


주중에 회사원으로 써야 할

사회생활 에너지를 다 써서 그런지

통 일요일 아들 농구 경기를 보면서

다른 농구맘들과 있을 땐

더 이상 사회생활을 못하겠더라.


그냥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으로

숫기 없게 앉아 있고 만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소중한 주말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농구 경기장까지는 가지만


주말 농구맘으로서

사회생활까지는 …

못하겠다.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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