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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여행 Sep 30. 2022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1. 대하소설 토지 1부 1권,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박경리 작가님의 대하소설 토지 재독이 시작됐다.

재독을 하며 간단한 단상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하는 글이다.

부디, 20권까지 이어지길 바라본다.


초독 때 스쳐 지나간 문장이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토지 1부 1권, 자서 p9>


저 문장이 아프다. 그 아픔이 갈비뼈 사이사이가 찌릿찌릿한 느낌이 아닌 몸의 통증으로 와닿는다.

'빙벽'이란 말에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맨 손으로 잡은 것처럼 손이 아리고 매서운 바람에 살이 에일 듯하다.

그 와중에 '팽팽'이란 형용사는 나를 잡아당긴다.


틈만 나면 저 문장이 생각난다.

급기야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린다.  '빙벽에 걸린 자일'

빙벽을 타고 있는 사람의 사진이 나온다. 빙벽의 자일이 한눈에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빙벽을 타고 있는 저 사람도 힘들어 보이는데, 저 사람이 작가님일까?

우리의 삶을 저런 것에 비유를 많이 하긴 하잖아.

그럼 왜 빙벽을 타는 듯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삶이라고 하지 않고, '빙벽에 걸린 자일'이라고 했을까?


꿈에까지 저 문장이 따라다녔나 보다.

새벽녘 의식이 채 깨어나기도 전에 '빙벽에 걸린 자일'이 맞았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빙벽의 자일은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있어야 한다. 빙벽을 오르는 사람은 그 자일에 의지해 빙벽을 타는 것이다. 자칫 자일이 늘어져 버리거나 빙벽에 박혀 있는 못에서 빠지거나 끊어져버렸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박경리'라는 자일에 의지해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작가님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팽팽하게 잡아당겼을까.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 자를 걸어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토지 1부 1권, 자서 p9>  


'빙벽의 자일'의 연장선에서 함께 들어온 문장이다.

자의로는 도망칠 수도, 사슬을 물어 끊을 수도 없는 이유를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고 하신다(토지 1부 1권, 자서 p9). 문득 산꼭대기로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떠오른다. 산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질지 알면서도 묵묵히 밀어 올리며 벌을 내린 신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시시포스와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토지 1부 1권, 자서 p9)라며 운명에 맞서는 작가님의 모습이 어쩐지 닮은 것 같다.


이제, '빙벽의 자일'에 내가 아팠던 이유를 내게 물어볼 차례이다.

팽팽은 고사하고 다소 느슨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삶의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2022. 9. 30.


필사는 토지벗님이 선물하신 노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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