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국계 제약사들은 본사의 '효율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예산과 인력을 줄이는 '비용 절감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분위기가 상당히 냉랭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외국계 제약사는 사업부 전체를 정리하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그 마케터는 국내 회사로의 이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고용 안전성이 높은 국내사에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회사와 외국계 회사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외국계의 경우, 조직이 영업과 마케팅 중심으로 돌아가며 마케터 입장에서 의사결정은 회사의 방향으로 바로 이어진다. 한국 조직은 매출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영업, 마케팅에서 타 부서의 협조가 매우 긴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모든 부서의 연간 KPI에 회사의 매출이 일정 부분을 차지했었다.
국내사의 경우 후보물질서칭 같은 매우 초기 연구부터 허가, 생산, 유통, 영업, 마케팅, 기업홍보 등이 모두 국내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영업 이외의 조직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전체 인원 중에 국내영업부문(CE 포함)의 인원은 25% 정도 수준이다. 외국계가 영업과 마케팅 비중이 70% 전후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외국계는 영업과 마케팅 위주의 판매에 집중된 조직이고, 대부분 오리지널 제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케팅과 영업 활동이 보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이다. 국내사의 경우 신제품 출시 전 검토부터 생산을 위한 SCM, 손익 증대를 위한 비용 관리, 영업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업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외자사에서 국내사로 이직한 경우, 이러한 조직의 특성으로 마케터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 회사는 왜 이렇게 협조가 안 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영업과 마케팅 외의 부서들이 각자 자기의 KPI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업, 마케팅의 요청 사항은 그들에게 추가 업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마케터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역량임은 분명하지만, 외국계에서는 키메시지를 요약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면, 국내사의 경우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서로 win-win 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외국계 10년, 국내사 9년을 다니면서 퍼포먼스가 우선시 되는 외국계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한 국내사의 문화에 적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기수로 채용하는 국내사에서 네트워크를 가지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케터로서 이직을 검토할 때, 이런 조직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이직을 검토하면 좋겠다. 마케팅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므로, 나의 역량이 커뮤니케이션 쪽에 큰 강점이 없으면 지금 겪고 있는 고용 불안보다 더 큰 불안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