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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첨지 Sep 04. 2019

첨지스러운 나의 인도여행 - 콜카타 1

고등학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운수 좋은 날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인 인력거꾼 김첨지가 운좋은 하루를 보내고 기분 좋게 설렁탕을 사서 집에 왔더니 마누라가 숨을 거뒀더라는 슬픈 이야기.


김첨지는 운이 좋은 듯 보여도 실은 운이 없다. 내 별명은 김첨지다. 운이 정말 드럽게도 없기 때문에. 오랫만에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면 너의, 언니의 첨지 스토리를 들려달라고 난리다. 나의 불운은 이미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오락거리이고, 나도 오래 전부터 이런 불운을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며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는 '첨지스러운'이라는 새로운 형용사가 붙었다.


약 사년 전의 태국, 인도 여행에서도 나의 첨지끼는 폭팔했다. 그 썰을 풀어 여러분께 웃음을 드려볼까 한다. 물없이 밤고구마 열두개 먹은 답답함, 확실하게 보장해 드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콜카타 서더 스트릿의 인력거꾼


콜카타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치앙마이발 나컨차이 버스를 타고 장장 10시간 정도를 달려 방콕 그리고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스파이스 제트 항공을 기다리며 불편한 공항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콜카타 공항에 도착하니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공항 밖으로 한번 나가면 그날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소지하지 않는 이상 다시 공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할 길치 기질이 나를 엿먹이려고 작정한 것인지, 아니면 편한 의자를 찾으려던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인지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실수로 통과해 버렸다. 다시 들어가려던 나를 단호하게 가로막던 그 여군은 등에 맨 긴 소총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참 예쁘게 생겼었다.
 
숙소가 문을 열지도 않는 아침 6시에 얼떨결에 진짜 인도로 들어서 버렸지만, 이제 어떡해야 하나 당황하기도 전에 밥시계가 꼬륵거리며 울려댔다, 그래서 공항 바깥의 가판에서 커피와 간단한 요기거리를 주문해서 먹었다.
 
대체 언제 닦는 것인지 불결한 액체가 끈적하게 눌어붙어 파리떼를 유혹하는 테이블에 앉아 꾸역꾸역 맛없는 음식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 있는데, 누런 사리를 입은 할머니가 내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아이 해브 노 머니’라 말하고 다시 식사를 하려는데 이분이 당췌 가시지를 않았다. 내 앞에서 묵묵히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마치 내가 당신에게 당연히 드려야 할 무엇인가를 안 주고 있다는 듯이 당당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무시한 채 소주잔 사이즈의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출입구 근처의 벤치에 가 자리를 잡았다.
 
적어도 첫 날에는 호구가 되지 않으리, 그리 마음 먹었다. 벤치에 앉아 외국인이 공항 밖으로 나오면 택시 쉐어를 할 요량으로  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런데 그 시간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없던 것인지, 내가 잘못된 곳에 앉아있던 것인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가득한 인도인 만이 눈동자도 흰자도 잘 보이는 그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몇십분이나 기다렸을까. 지칠 대로 지쳤지만, 호구가 되지 않겠다는 강한 욕망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여행자 거리인 서더 스트릿으로 가는 버스가 몇 번 인지 물은 뒤 탑승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울려 퍼지는 인도 풍 음악을 듣고, 아 내가 인도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걱정이 엄습했다. 아직 인도의 핸드폰 유심을 사지 않아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너편 좌석에 젊은 청년이 앉아있어 서더 스트릿으로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냐 물으니, 버스 기사에게 뭐라뭐라 물어보고 핸드폰으로 뭔가를 막 뒤지더니 에스플라나데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 부근에 가면 자기가 알려줄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도 시켜주고.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인도 여행의 시작이 괜찮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다 무너져 가지만 이름만은 파라다이스인 호텔


버스에서 내리니 길을 알려준 청년과 버스에 타고 있던 인도인들이 손을 흔들어 주기에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기분좋게 뒤돌아 선 내게 꼬질하고 깡마른 아이 두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미스, 도와주세요.” 공항 앞의 할머니는 그냥 무시해버렸지만, 아이들이 그러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더 안 좋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오십 루피 지폐를 건네주고 갈길을 가려는데 뒤통수에서 무슨 말이 들린다. “미스, 백 루피로 주세요.” 아니, 이 녀석들이?
 
무시하고 길을 가려했지만, 끈질긴 이 두 명은 “제발 백 루피만 더 주세요”라고 외치며 버스 스탠드부터 뉴 마켓 초입부까지 나를 쫓아왔다. 급기야 동생쯤으로 보이는 작은 애가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 짜증이 솟구쳤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벼운 결벽증도 있어 쌩판 남이 나를 만지는 것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날 나는 총 15kg의 배낭을 매고, 아픈 왼쪽 무릎을 질질 끌며 걷는 중이었다. 절로 고함이 나왔고 내가 진짜 화났다는 것을 안 아이들은 그제서야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가분한 몸으로 길을 걷는데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깟 1700원이 뭐라고. 그냥 줄걸 그랬나,
 
대략 십여분을 걸어  스트릿 초입부에 도착한 나는 잠시 멈춰서서 심호흡을 했다.
이제 숙소를 잡아야 했다. 한국에서 여행기와 가이드북을 읽고 정보를 종합한 결과,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가보는 것이 흥정하기에 좋을 것 같아 무작정 온 상태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인생 최대의 실수 중 하나로 손꼽을만한 미친 짓이었다.
 
여행 전, 인도 가이드북을 사서 괜찮을 법한 숙소 리스트와 적정 가격대를 다 뽑아왔었다. 가이드북에 나온 가격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그 수준에 맞출 수는 있을 줄 알았다. 기대는 리스트에 있는 첫 번째 숙소에서부터 무너졌다. 선풍기방1인 5~6백 루피를 예상하고 있던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선풍기 방 없어. 에어컨 방이 2,600 루피야,"


고급 버스와 서민용 저렴이 버스. 앞뚜껑이 없어도 막 달린다.


욕이 절로 튀어나오는 가격에 됐다고 외치고는 리스트에 있던 다른 숙소를 찾아 해맸다. 결과는 뭐, 첫 번째 숙소만큼 높게 부른 곳은 없었으나 대부분 천루피 중후반 대의 가격을 불러댔다. 숙소가 좋았으면 불만도 없다. 쓰레기 같은 방도 천루피 중반의 가격대를 자랑했다. 길가에 망연자실 돌아다니니 여기저기게 앉아있던 할머니들이 내게 손짓하며 “마리아, 마리아(마리아 호텔로 와)” “빠라곤, 빠라곤(파라공 호텔로 와)” “헤나, 헤나(와서 헤나 좀 받아 봐)”라고 외쳐댔다. 또, 택시기사들은 짐을 든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 몫을 잡아볼 요량인지 어디 가냐고 자꾸 귀찮게 물어 보았다. 나는 짐은 무겁고, 무릎은 더 아파와서 정말 쓰러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옆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시스터, 숙소 찾아?”
 
옆을 돌아보자 머리가 살짝 벗겨진 작은 아저씨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가 별로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 건 자명했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한 번 믿어 보고 싶었다. 그에게 원하는 가격대를 말하니 날 여기저기 데려가며 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미친 짓이었다. 너무 더러워서 짐조차 내려놓기 싫은 숙소, 좀 멀쩡한가 싶은데 가격을 뻥튀기 하는 숙소, 문이 잘 안 닫히는 숙소, 예약이 꽉 찼지만 네가 돈을 더 주면 방을 하나 내줄 수 있다는 숙소 정말 이리저리 소득 없이 끌려 다녔다. “씨스터, 노 쁘로블롬, 다음 숙소는 정말 괜찮아.”이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왼쪽무릎에 한계가 왔다. 나는 아저씨를 불러 세우고 눈앞에 보이는 인터네셔널 게스트 하우스라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 그냥 여기 갈래”라 말한 후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 곳은 그가 아는 곳이 아니었는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리셉션에는 아저씨 4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선풍기방이 있냐 물었다. 선풍기 방은 없고 천 루피 짜리 에어컨 방만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았어!!!!
 
여태껏 들은 가격 중 가장 적절한 가격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방을 잡았다. 방에는 에어컨 하나, 티비 하나 딸랑 붙어있고, 벽에는 코딱지인지 똥인지 정체 모를 것들이 잔뜩 붙어 있었으며, 매트리스는 눅눅하고, 화장실은 더럽고 지린내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앉고 싶었다. 샤워하고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난 후 인도여행 카페에 콜카타에 있다는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인 남성 2명으로 이루어진 콤비로부터 댓글이 달렸다. “저희도 지금 콜카타에요. 괜찮으시면 연락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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