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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첨지 Sep 04. 2019

첨지스러운 나의 인도여행 - 콜카타 2

길가의 옥수수 가판대

너무나도 생경한 인도의 모습에 앞으로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그리고 여자 혼자 인도여행을 하면 위험하니, 한국인 여행객을 찾아 팀을 꾸리라는 충고 또한 무수히 듣고 온 터였다. 아직 이들의 여행 일정이나 동선은 모르지만, 잘하면 일행이 되거나 그러지 못하더라도 여행 정보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댓글에 남겨져 있는 카톡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내 그들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오후 1시, 여행 커뮤니티에 콜카타 맛집으로 소문난 한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벌써 한 달째 인도여행을 한 베테랑이었고, 나에게 공산품을 살 때의 주의사항을 비롯하여 여러 팁들을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물을 살 때 물병 윗부분에 가격이 적혀 있으니 바가지를 당하지 않도록 확인 후 사야 한다는, 이런 간단한 것 조차 몰랐던 나에게 그들은 너무나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식사 후 함께 빅토리아 메모리얼 파크로 이동했는데, 외국인의 관광지 입장료가 내국인의 10배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심지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라 한다. 가격의 대소여부를 떠나, 대놓고 외국인에게 빨대를 꼽겠다는 심보가 고약해서 화가 났으나, 200루피는 싼 편에 속한다는 그들의 말에 내키지 않는 마음을 안고 입장하였다. 툴툴거리며 입장을 했지만, 그곳은 역시 예쁘긴 했다. 그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콜카타 시내 안에 이렇게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풍경을 둘러본 후, 공원 내의 박물관에 입장하려는데 표 검사를 한번 더 했다. 사실 아까 인도 대학생들처럼 호숫가에 앉아 풍경을 즐겨보려는데 그곳에 새똥 지뢰밭이 펼쳐져 있어 표를 펼쳐서 깔고 앉은 다음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입장 시 표 검사를 했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서 검사원에게 물어보니, 200루피를 새로 내라고 한다. 당장이라도 돈을 받아갈 기세여서, 나는 얼른 박물관 밖으로 도망쳐 그들이 관람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와중에 하이파이브 하자는 사람, 같이 사진 찍자는 사람, 별별 사람을 다 만났다. 무비스타가 이런 기분 이려나.


빅토리아 메모리얼 관람을 마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의 동선 및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솔트레이크 근처의 호텔에서 하루 600루피를 내고 머물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방도 넓고 깨끗하단다. 역시 나는 호구였어. 속으로 되뇌고는 그들과 동행하고 싶다고 요청하였다. 그들과 함께라면 마음도 든든하고 숙박비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도 마침 새로운 숙소를 찾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함께 뉴마켓을 구경하고, 라즈의 스패니쉬 카페에서 맛있는 저녁까지 먹은 후, 각자 쉬면서 새 숙소를 알아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들은 밤길이 위험하다며 레스토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숙소에 묵고 있던 나를 굳이 그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참 좋은 사람들 같았다.


셋이 함께 머물 숙소를 알아본 결과 그들이 묵고 있던 곳이 가장 저렴하고 시설이 좋았기 때문에, 내가 그쪽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예약과 결제까지 그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일이 정말 술술 풀리는 구나 싶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뚝뚝

다음날 아침 홀가분한 기분으로 일어나 씻지도 않고 짐만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하룻밤 천 루피짜리 거지같은 호스텔에 작별인사를 고한 후, 택시를 잡아 솔트레이크의 호텔로 이동하며 길가의 풍경을 즐겼다. 여행이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에 길가에 풍기는 찝찝한 소변 냄새도,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구름 낀 하늘도 어쩐지 정겹게 느껴졌다.


호텔은 그들의 말대로 깨끗했다. 나는 너무 피곤했기에 그날의 관광은 포기하고 하루 종일 방에서 잠을 잤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관광을 마친 그들이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나가서 저녁을 먹고, 맥주와 탄두리 치킨을 사와서 내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인도식 치맥을 즐겼다. 그 둘은 8%짜리 인도 맥주 반 병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술이 약했다. 그러다 내가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둘이 뜬금없이 술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리를 마친 후, 한 명은 피곤하다고 방으로 돌아갔고, 다른 한 명은 나에게 바람을 쐬자고 해서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자신의 프로필이 네이버에도 뜬다며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그것을 보여준다기에 내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언제나 반전은 존재하는 법. 화기애애하게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곳에서 못된 일을 당할 뻔 했다. 싫다고 거부하니 포기하고 자기 방으로 가는 것 같았으나, 중간에 다시 돌아와 5분만 뽀뽀해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며 힘으로 찍어 누르더라. 그때의 공포감과 무력감이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마음 같으면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갈기고 뺨이라도 후려쳤어야 했지만, 너무 무서웠기에 말로 설득해 곱게 돌려보내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완전히 돌아버린 놈이 아니라서 끝까지 거부하니 돌아갔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공항에서 할머니에게 적선을 하지 않아서, 불쌍한 아이들에게 고함을 쳐서 벌을 받은 걸까, 여행 전 재미 삼아 간 점집에서 굿판 벌이라는 걸 무시하고 그냥 출국해서 탈이 난 걸까, 내가 멍청해서 이런 일만 생기는 걸까, 나는 왜 인도에 있는 걸까, 오만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뜬눈으로 새벽을 지새우고날이 밝아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뻔뻔하게도 같이 나가자며 문을 두드리고 카톡을 보내는 그들의 얼굴을 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나는 몸이 안 좋아서 나갈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한 후, 종일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있었다. 그날 오후, 콜카타에서 기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산티니케탄이란 동네에 사는 친구 수딥이 나를 찾아왔다. 그와는 일본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사이로, 나는 본래 그의 사촌동생이 사는 아파트에 묵기로 했었으나, 사촌이 갑자기 입원하게 되어 계획이 틀어지게 된 것이다.

                                  

친구 수딥(왼쪽)과 사촌동생(오른쪽)


수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는 몹시 분개했다. 그리고 혹시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인도 경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여기서 나쁜 짓 하면 집에 절대 못 가!” 그의 한마디에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인도인을 조심하라는 말을 무수히 듣고 온 내가, 한국인에게 위협을 받고 인도인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나는 콜카타를 예정보다 빨리 떠나, 몇 명의 유학 동기가 더 있는 산티니케탄으로 이동하기로 결심한 후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간 나는 테레비 소리도 줄이고 말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이 방문을 두드릴 때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불안한 마음에 몇시간 남짓의 짧은 잠을 잔 후 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급히 짐을 싼 후 서더 스트릿으로 갔다. 바라나시의 패션리더를 꿈꾸며 태국에서 구입했던, 밥말리의 얼굴이 양 무릎에 큼지막히 프린팅 된 120 바트 짜리 바지는 그때 미처 챙겨 나오지 못했다.(이 바지는 지금도 내 가슴속에…) 서더 스트리트에서 환전을 마친 후 하우라 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기사들과 흥정을 하니 300루피 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른다.


그러다 문득, 용산 전자상가 통로에서 플레이 스테이션 공개 입찰을 한 어느 용감한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택시기사가 잔뜩 늘어서 있는 곳으로 가서 용기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하우라 스테이션 100루피!!!!!!” 


효과는 없었다. 택시기사들이 담합이라도 한 것 마냥, “노우”를 외쳤고, 결국 큰길로 걸어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아 150루피에 하우라 역으로 갔다. 매점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기차에 올라, 뒷좌석의 할머니에게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하니 이것저것 호구조사를 하신 후 내 머리를 터치하며 “갓 블레스 유”라고 축복해 주셨다. 그 축복이 앞으로는 네게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인도의 교육도시 산티니케탄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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