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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맘 Sep 17. 2020

귀농과 귀촌의 한 끗 차이

모르고 시작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남편이 귀농하자고 했을 때 선뜻 동의할 수 없었지만 설득당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귀농과 귀촌의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차이를 명확이 알았다면 나는 어쩌면 필사적인 저항으로 귀농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사업체 CEO가 되고, 농업인 강사가 되고, 빵을 만들어 파는 등의 다양한 인생 2막은 한 끗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귀'촌'과 귀'농'의 그 한 끗 차이 말이다.






'시골'이란 단어에는 어떤 따스함, 편안함이 담겨 있다. 시골을 경험하지 못한 서울 토박이에게 시골은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귀농하면 감성 넘치는 아담하고 예쁜 집에 살며 푸른 잔디마당에 긴 갈기를 휘날리는 큰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싶었다.

비 오는 날은 젖은 나무의 등걸 냄새를 맡으며 커피 향에 취하고, 눈 오는 날은 벽난로 앞의 따스함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엔 툇마루에 앉아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따스한 봄 햇살 아래에선 흔들 그네에 몸을 맡기는 나른함 역시 꿈꾸던 삶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한 귀농의 모습이었다. 꼬꼬파의 설득에 마지못해 허락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서울 토박이로 40년을 살았던 내게 귀농은 그저 시골에 가서 사는 일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이해밖에 없었다. "할 거 없으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처럼 귀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아무 때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자본이 많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시골은 집값이 싸니 전셋집 얻을 돈과 수입 없이 버틸 1년의 생활비, 그리고 농사에 투자할 약간의 돈만 있으면 시골 생활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는 열댓 평의 조그마한 식당이나 카페를 하나 차려도 보증금이나 권리금 몇 천이 우습게 들어가고, 리모델링 인테리어만 해도 억 단위로 깨지며 월세는 또 얼마나 비싼가.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시골에서의 시작은 적어도 억 단위의 투자비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법이 깔려 있었고 자리 잡는데 걸리는 1여 년의 시간만 고생하면 내가 꿈꿔왔던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평생 곁눈질로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을 1년 투자한다고 잘할 수 있을까?

계획대로 1년 뒤부터 수입이 생길 거라는 어설픈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꿈에서 깨 현실을 자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보같이 내가 생각했던 것은 귀'농'이 아닌 귀'촌'이었던 것이다.

귀촌은 '먹고 살 일 걱정 없이 취미 활동으로 농사를 지으며 여가를 보내는 농촌의 삶'이고, 귀농은 '농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농촌의 삶'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혹은 농사를 망치면 수입이 없어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귀촌이 아닌 귀농인 거다.

안타깝게도 우린 '귀농인'이었다. 퇴직금도 없고, 안정된 연금도 없으며, 임대인도 건물주도 아니었다. 몸과 손을 놀리면 어디 돈 한 푼 들어올 곳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으니 농사를 여가로 지을 수는 없었다.

귀농이란 농사에 올인, 농사로만 전력질주를 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너랑 나랑 단 둘이 알콩달콩한 삶이란 애초에 잘못된 계획이었던 것이다.



농사 경험이 전무한 도시인이 농촌에 가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적다. 아니, 없다고 보면 된다.

일단 몸이 농사 체질에 맞지 않는다. 밤 11시에서 새벽 1시쯤 잠들어 아침 6시에서 7시쯤 일어나는 패턴에 익숙해진 도시 몸뚱이는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농촌의 패턴을 허락하지 않는다. 적응하기가 너무 괴롭다.

오전 9시만 넘으면 타는 듯이 뜨거워지는 햇살도 괴롭다.



몸이 익숙해지는데 한참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농사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농사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고, 바람과 햇살과 같은 날씨의 조화를 예측하고 기획하여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책으로도 배우기 어렵고, 유튜브로도 익히기 어렵다. 경험과 몸의 감각으로 체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환상의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농사는 아주 많은 인내력이 필요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면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법칙은 도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준비 없는 귀농인, 귀촌과 귀농의 한 끝 차이를 모르고 무작정 덤비는 귀농은 그래서 위험하다.

아주 많은 수업료를 몸이나 돈으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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