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or Die 1: 회고와 기록
모호한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몇가지 요소들은 확실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스킬이나 노하우에 관련되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와 같은 형태기도 하지만,
"이것을 안하면 직업인으로서 사망이다." 와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다.
걔 중에 요즘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1.회고와 기록, 2.인풋, 3.열정부여 정도 인 것 같다.
그래서 시작하는 Do or Die 시리즈.
커피가 취미가 되면서 느낀 것은 "균일도는 중요하다" 라는 것이다. 커피를 판매하거나 깊은 취미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균일도'에 대해 상당한 중요성을 느낀다. 무언가를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기량의 관측과 각 요소와 그 상관관계들을 명확하게 해야한다.
커피로 예를 들자면, (1) 어떤 원두를, (2) 어떤 그라인딩 세팅으로, (3) 몇 그램을, (4) 어느 세기의 템핑으로, (5) 어느정도의 압력으로, (6) 몇 분 가량의 추출할지 와 같은 사항들이다.
일로 따지면 (1) 어떤 일을, (2)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여, (3) 어느정도의 퀄리티를 내는가? 와 같이 3단계로 나뉘는 것 같지만.. 사실 일은 커피보다도 복잡한 세부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퀄리티에 대해서는 주관의 영역이 포함되어 있고, 무엇보다 기량의 관측과 책정 자체가 흔들릴 수가 있다.
특히 '우리 회사'로 대표되는 '하나의 갑'이 아닌, 제휴사와 같은 '다수의 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이.
통찰은 자신이 틀리기를 바라는 무른 마음이다.
내가 연구하고 탐구하는 차원에서 대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한 이유가 나에게는 IT업계의 최전선에서 급변하는 사회적 트렌드와 기술적 트렌드를 쫓아가기에는 대학원이 썩 좋은 방향이 아닌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원이 집중하는 '기반의 영역'보다 살짝 더 친절한 형태로 가공된 정보를 활용하고 싶어하는것 같다. 흔히 말하고 공유되는 '인사이트'가 바로 그것.
근데 이 '인사이트insight' 라는 것이 단단한 고집과 같으면서도 물러터진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통찰'이라는 직역과 같이 시시때때로 재조합되며 변화한다(한마디로 정반합을 무한반복). 인사이트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되려 핵심이 발견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검증하고 해석해야한다. 그래서 어디에선가 "데이터는 잘못이 없다. 해석하는 사람이 잘못한거지" 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근데 사람은 데이터 같지 않다.
주관의 산물인 사람은 종종 그 자체로 잘못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회고와 기록이 값진 이유가 된다.
우선 회고는 나의 행동양식과 결과가 합해진 데이터를 보는 것과 같다.
주관과 객관을 넘나들며, 나의 불완전함을 정의하고 매뉴얼을 만든다.
불완전함을 완전하게 컨트롤 가능한 상황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많은 영역을 포괄하는데,
개인의 단점뿐만이 아닌 트라우마나 특정 신체적 기제까지도 포함한다.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집중하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물리적인 시간 혹은 그만한 의욕이 뒷받침되어야한다.
대신 집중을 시작하면 폭발적인 효율을 낸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스스로 도취되어 작은 선순환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집중하면 잘함, 집중못하면 망함이다.
되게 당연한 말처럼 들리는데, 나는 그 정도가 많이 크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말은 즉, 균일도가 중요한 프로세계에서는 탈락이라는 말이다.
잘할 때는 객관적인 근거들로 하여금 잘한다는 피드백이 확실히 오는 편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못할 때가 문제다. 한번 제대로 움직이는데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낭비하는 시간도 많고, 이렇게는 못산다는 것을 내가 가장 먼저 감지한다.
근데 이것을 좀 더 쓰라리게 하는 것은 기존에 쌓아둔 신뢰관계나 기대치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나는 너무 힘든데, 주변에서 기대를 높이고 부담을 준다.
잘할 때에는 그 위에 올라타서 더 높은 퍼포먼스를 보인다면, 못할 때에는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 자체가 된다.
그렇게 '죽음의 소용돌이'가 온다.
직업인을 산송장으로 만드는 소용돌이
<죽음의 소용돌이>
집중하지 못함 -> 업무 효율 떨어짐 -> 지나치게 많은 시간 소모 -> 워라밸 파괴 -> 마음이 다치기 시작, 여유없음 -> 수면장애 ->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 악화로 집중력 떨어짐 -> 무한순환...
이것이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례로,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던 죽음의 소용돌이다.
일 년전의 나는 인생 처음 겪는 거대한 파도로 인해, 내 인생 자체를 부정당하며 좌절했고,
그 파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정의내리는데에만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지금은 무엇과 싸우는지 확실히 알고 있기에 비교적 많은 방지책이 구비되어 있다.
러닝: 건강한 정신 함유 및 잠을 잘 자게 함
업무 공간 정돈: 다른 곳에 집중을 뺏기지 않게 함
12시 이후 근무 지양: 삶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여 주중에 제한된 시간과 집중력을 발휘
생각과 공상은 걸으면서: 신체를 써서 뇌를 활성화, 앉아있는 시간에는 컴팩트한 집중
뽀모도로 타이머: 집중이 절대 안될 때 사용. 한정된 집중력을 제한된 시간동안 발휘
집중에도 나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집중을 잘 하기 위함' 이라는 간단한 말로 정의되는 과업이지만,
그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특성과 고찰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회고를 진행하면서 내 자신을 -특히, 일하는 내 자신을- 더 잘 알게되었으며,
시간도 많이 단축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은 기록되어야 더 드라마틱해진다.
힘든 시기에 기록한다는 자체가 '자신이 머물러있는 현재 상황과 기분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내포하며,그것을 온전히 이겨냈을 때의 시점에서 본다면, 각각의 기록은 하나의 영웅담이 된다.
또 이 영웅담이 노출되기 시작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영웅으로 본다.
인생에서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인생에서 어려움이 없는 먼치킨 주인공은 지루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공하는 주인공에는 환호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은 스타가 되는 방법이며, '휴머니스틱 레버리지'를 가능케 하는 방법이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니 항상 능력적으로 좋은 평판에 있을 수 있고,
많은 능력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인듯.
다만 항상 증명하고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있다.
근데 레버리지니까 부담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