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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나무 Jun 11. 2020

90년대생 며느리의 고민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이유

나도 이런 내가 낯설다 

나는 1991년 생, 서른 살. 8년차 전업 작가이다. 대부분의 글은 인정받기 위해서 였고, 어쩔 때는 돈 때문에 썼다. 가슴 속 끓어오르는 감정에 토해내듯 글을 쓰는 날도 있었다. 지독한 짝사랑, 부당한 일에 맞서려는 정의감 등 글을 쓰는 동기는 다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어서 컴퓨터를 켰다. 머리는 아프고, 누우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어 글을 쓰기로 했다. 심장이 묵직하고, 머리도 복잡해서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먼저 말해둘 것은, 나라는 인간이 본래 감정 기복이 적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를 단단한 사람,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고 평한다. 내가 보기에도 대체로 그렇다. 나는 때때로 뜻하지 않게 주위 사람을 상처줄 만큼, 꽤나 느긋하고 무딘 성격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미워해도 '괜찮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더 많은 걸' 하고 넘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나를 좋아한다. 내게는 스스로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싫어하는 면모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대체로 내가 좋다. 



그런 내가. 오늘 울다가 과호흡 증상이 왔다. 

숨이 점점 가빠왔다. 허억, 허억 소리를 내는데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손과 발 얼굴 온몸에 경련이 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벽을 붙잡고 겨우 부엌에 가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침대에 가서 누웠다. 계속 손발이 저렸다. 나 지금 집에 혼자있는데. 혹시 잘못되면 안 되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호흡법을 따라했다. 조금씩 풀려갔다. 휴 다행이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지금 네다섯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리는 지끈거린다. 2신데 잠이 오지 않는다. 귀에선 이명이 들린다. 


이런 격동의 감정?을 겪어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아 정말, 드럽게 힘들다. 


사건의 발단은 설날, 아니 결혼인건가?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아니, 더 본격적인 발단은 올해 초 설날이었다. 물론 그보다 앞서,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한 그 순간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너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고 했는데. 한 남자를 사랑한 것 뿐인데, 정녕 나는 이런 괴로움까지 감내해야 하나? 

(<부부의 세계> 명대사가 떠오른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언젠가부터 남편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만 하면, 문득 '추석이 얼마나 남았지?'라고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자동으로 차올랐다. 그리고 만약 그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나는 엉엉 울었다. 애처럼. 꺼억 꺼억 하면서. 명절,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하면, 나는 어김없이 다시 첫 설날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일상 속에서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난 직후라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남편의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다만, 지금 내게 주어진 '며느리'라는 이름에 수반되는 어떠한 무게감에 문제가 있다.


버겁다고 표현해야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버겁다는 것은 그것을 감당할 의사가 있지만 역량이 안될 때 하는 말이 아닌가. 나는 전통적이고 부당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남편의 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바로 이 간극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평소처럼 내가 '나를 싫어할 사람은 하라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야'라고 쿨하게 넘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정녕 '나쁜 며느리'가
될 수 밖에 없을까? 
내 가치관과 신념을 지워내고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할까?
내가 나 자신으로서 행복하면서
사랑받는 며느리가 될 순 없을까?


나는 91년생, 그러니까 90년대생의 선두주자다. 최근 여성의 결혼 나이가 30대 초중반이니, 앞으로 수년간 90년대생 여성들의 본격적인 결혼 시기가 다가오게 될 것이 아닌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게 분명하다. 


물론 나 자신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일. 하지만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며 건강하게 이 문제를 풀어가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결혼을 앞둔 90년대생 예비 며느리들, 그리고 다가올 추석이 두려운 우리 동년배 며느리들을 위해 함께 고민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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