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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맨 Sep 10. 2023

코로나 학생들의 졸업식

가게 이야기

     

올해 가을 학위 수여식 날 아침, 학교로 가는 등굣길이 너무 조용했다. 그나마 지하철역 앞에 줄지어 있는 꽃다발 노점상이 졸업식임을 알게 한다. 정문으로 줄지어 들어가던 차량 정체도 없는 걸 보면 아마 졸업식장 역시 썰렁했을 것이다. 코로나 3년을 온전히 겪은 학생들의 졸업식이라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학기 내내 시끌벅적한 강의실보다 인강용 컴퓨터와 친숙했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학교 식당 대신 혼자 배달 음식에 익숙한 학생이었다. 특히 대학 생활의 꽃인 동아리나 서클 활동의 재미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고, 학과 선배들과의 mt나 뒤풀이 술도 제대로 먹어 보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가게 손님으로 이들과 지내면서 학교생활을 단편적으로 지켜보았다. 기말 시험날 늦잠 자느라 시험을 보지 못해서 유급한 학생도 보았고, 원룸에 살면서 컴퓨터 게임에 빠져 밤낮이 뒤바뀐 학생도 보았다. 외로움을 달래느라 너무 먹어서 비만이 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고, 진로 상담할 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학생도 보았다. 친구나 선배의 도움 없이 혼자서 모든 문제를 겪어야만 했고 그 결과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다. 곁에서 보는 나도 그들이 외롭고 힘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그들의 방식도 보았다. 혼자라서 힘들어하기보다 스스로 고독을 즐기는 것이다. 이들은 남을 의지하거나 도움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밥도 당연히 혼자 먹으러 오고, 국내외 여행도 혼자서 잘 다녀온다. 자기 관심사는 학교 내외를 불문하고 온라인 모임으로 잘 찾아다닌다. 요리 만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도 있다. sns에서 본 특이한 음식을 만들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요리법을 물으러 온다. 만들고 나면 시식해 보라고 가져오면서 친해진 학생도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고 거주 지역에서 관심사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잘 찾아내는 것 그들의 방식이다. 주변인들의 눈에도 띄지 않게 조용히 활동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습관이 있다. 그 결과 남에게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다. 카톡을 보내도 문장이 짧다. 그나마 이모티콘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래도 혼자서 하는 운동을 하거나 나 홀로 취미, 교양 활동을 하며 외로움을 잘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아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친구와 형제 사이에서 부대끼며 자랐다. 혼자 행동하는 것이 괜히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서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서서히 외로워져만 갔다. 어설픈 노인이 된 지금 제법 많이 떨어져 나가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혼자 식당에 가고, 여행도 다니며 즐거움을 찾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직 뭔가 허전한 마음이 많이 들어 말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다니지만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알기에 더 노력해 볼 생각이다.      


인터넷 매체에서는 이들을 mz 세대라고 부르며 책임감과 협동심,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비하하는 기사를 보았다. 어차피 선진화가 되면 될수록 육체노동보다는 정신적인 업무가 많아진다. 공장에서의 협업보다는 금융이나 it 분야 종사자가 내는 나 홀로 실적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앞으로는 창작이나 it  개발자 즉 크리에이터가 많아질 것이라 개개인의 능력이 우선시될 것이다.  

근무 형태도 사무실에서 재택근무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생각만큼 쉽고 편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육체적인 욕망의 절제가 필요하고, 가식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혼자 연구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즉 재택근무는 대학 시험에서 암기식으로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오픈 북으로 시험을 치는 것처럼 일하는 근무 형태인 것이다. 이것은 올 해의 졸업생들이 제일 잘하는 일이다. 윗사람의 암묵적인 정답이나 선배로부터 배운 경험 위주로 일을 해 온 꼰대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특이한 생각이 한심해 보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앞날의 기업 업무 형태에는 가장 적합한 일꾼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게를 찾은 졸업생들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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