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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Dec 01. 2024

감각의 시작은 마음가짐

나를 성장시킨 책


1. 모두가 감각을 말하는 시대, 일의 감각을 책의 제목으로 쓴다는 건 웬만큼 일을 잘하지 않고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네이버의 녹색창을 만들고, 카카오의 비즈보드를 기획하고, 매거진B를 창간한 조수용 대표라면? "그래, 이 사람 정도면 일의 감각에 대해 백번 천 번 떠들만하다"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오히려 나처럼 '왜 이제야 이야기를 꺼내놓았을까' 되려 의문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을 수도. 이에 대해 조수용 대표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제가 무언가에 대한 책을 쓸 자격이 되지 않았는데 함부로 활자화시키는 건, 서두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이 책에 얼마나 오랜 시간 응축되고 농축된 그의 생각과 경험을 고심해서 담았을지,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좋아하는 가수를 기다리는 팬처럼 잔뜩 흥분상태였다.


2. 이 책은 일의 감각이라 쓰고 일의 마음가짐이라 읽어야 하는 책이다.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일을 대해야 (조수용 대표 같은) 일의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를 말한 책이랄까. 혹 감각을 기르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특별한 노하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도 화자가 누군지에 따라 그 감도가 달리 전해진다. 예를 들어,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이, 조수용 대표의 언어로 '작은 것을 대하는 태도'로 바뀌어 전달될 때 "당연한 소리네"가 아니라 "이 태도는 정말 중요하구나"로 다가오는 것이다.

 

3. 조수용 대표가 정의하는, 책을 관통하는 '일의 감각'이란 그래서 무엇이었을까. 그는 일의 감각을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이라며, 감각을 창조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바라봤다. 흔히 감각이라 하면 순간적으로 반짝이며 떠오르는 크리에이티브한 무언가, 그래서 소수의 천재들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감각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의 정의대로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지 잘 가려내는 것"이 감각이라면, 좋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그 '기준'을 아는 것이 중요해진다.


4. 그 기준은 일 잘하는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그것, 역시나 '본질'이다. 본질을 알면 취할 것과 버릴 것이 생각보다 쉽게 구분된다. 누구나 본질을 외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본질에 닿을 수 없는 이유는 '마음가짐', 즉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감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수용 대표가 항상 예시로 든다는 '볼펜 디자인' 사례는 짧지만 감각이 탄생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잘 담고있다.


어느 날, 멋진 슈트를 차려입은 누군가가 당신을 찾아와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볼펜 디자인을 부탁합니다. 디자인 비용은 10억 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부탁입니다. 10억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 당신, 어떻게 디자인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이번에도 아까처럼(친구의 부탁) 바로 스케치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러지 못할 겁니다. 대신 생전 처음으로 볼펜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게 되겠죠. '그런데 도대체 볼펜이란 무엇인가? 10억 원짜리 디자인의 볼펜이란 대체 어때야 할까?' 그리고 아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볼펜을 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볼펜의 정의와 역사, 핵심 기술, 가장 많이 팔린 볼펜, 가장 쓰기 좋은 볼펜... 방대한 자료를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려고 할 겁니다. 저라면 10억 원의 일부로 비행기표를 사서 일단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전 세계의 큰 문구점을 돌아다니며 배낭을 볼펜으로 가득 채워 돌아올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10억 원짜리 디자인입니다. 대충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디자인을 내놨는데, 과거에 이미 인기 있었던 상품과 비슷하면 곤란합니다.

만일 볼펜을 잔뜩 모아 왔다면, 그렇게 모은 볼펜을, 당신은 다시 본능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할 겁니다. 테이블 위에 모두 쏟아놓고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볼펜과 납득할 수 없는 볼펜, 비싼 볼펜과 저렴한 볼펜, 필기감이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렇게 몇 달간 볼펜을 끝없이 파 들어간 당신에게는 어느새 볼펜 보는 눈이 생깁니다. 많이 팔린 볼펜은 무엇이 다른지, 못생겨 보이지만 필기감이 좋은 볼펜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사람들은 어떤 볼펜을 선호하는지, 시장의 최신 디자인 흐름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볼펜이라는 제품의 본질은 '이것'이며 전략의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바로 '여기'라고 말입니다.


5. 볼펜을 디자인하기 위해 남겨야 할 것(본질)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안목이 탄생하기까지, 그 시작점에는 10억 원이란 큰돈에 걸맞은 디자인을 하려는 '마음가짐'이 있다.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이 10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일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10억 원의 값어치를 하는 일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절대 그저 그런 결과물을 낼 수 없다. 크든 작든 내가 손에 쥔 일은 허투루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 그 마음가짐으로 일한 나날들이 쌓여 일의 감각을 만든다.


6. 결국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진다는 것은, '나'를 잃지 않고 지켜내며 일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상사의 오더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혹은 누군가의 인정과 좋은 평가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일의 중심에 '나'를 두고 스스로 일의 방향을 정해 소신껏 나아가는 것. 어쩌면 일의 감각이란 건 그래서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한 자들에게만 부여된 훈장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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