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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6.냉면의 시초 ‘메밀국수’


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음식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가볍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16번째 칼럼의 주제는 '메밀면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 



쯔유로 만든 육수에 여린 취나물과 닭 가슴살을 올린 냉메밀국수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차가운 냉면에 손이 간다. 쫄깃한 면발의 함흥냉면과 툭툭 끊기는 식감의 평양냉면은 냉면계의 양대 산맥이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입맛이 있는 것처럼 선호하는 냉면 맛도 제각각이다. 면발과 육수에 따라 냉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게 파생된다.



국수를 처음 만든 민족은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국수를 ‘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중국에서 ‘면’은 밀가루를 칭하는 말이다. 중국 화북에서 들여온 밀가루는 우리나라에서는 ‘진말(眞末)’이라고 불리며, 비싸고 귀한 음식으로 취급됐다.



중국에서는 국수를 만들 때 주로 밀가루를 사용했다. 반면 우리는 비싼 밀가루 대신에 메밀로 국수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국수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온 것은 '세종실록'이다. 이때의 국수 역시 메밀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국수 조리법이 등장한 것은 '음식디미방'에서다. 여기에서는 총 세 가지 국수 재료가 나온다. 밀가루, 메밀가루, 녹말가루다. 이 중에서는 당시 가장 귀한 음식이었던 밀가루가 최고의 국수 재료로 여겨졌다. 그다음 선호했던 게 메밀국수로, 왕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먹었다. 세종대왕 집권 시기에는 궁중에서 얼마나 메밀의 소비량이 많았는지 진상품으로 받은 메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여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에 205섬을 추가로 할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밀가루가 최상의 국수 재료로 여겨진 것은 구하기 어려운 희소성뿐만 아니라 국수의 품질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밀가루에 함유된 글루텐 성분은 반죽에 점성과 탄력을 준다. 식감이 쫄깃하며 면이 가늘고 길게 뽑히는 특징이 있다. 반면 메밀은 일반적으로 끈기가 없다. 점탄성이 없어 잘 끊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녹말가루를 섞어 뜨거운 물로 익반죽했다. 이 국수반죽을 작은 구멍으로 밀어내어 끓는 물에 넣고 익힌 뒤 찬물에 헹구어 면발을 만들었다. 이것이 압착면의 형식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냉면 사리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메밀가루로 만든 압착면이 대중화되면서 조선시대 국수문화는 서민들에게도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찬물에서 건져낸 국수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요리했다. 첫 번째는 따끈한 장국에 만 국수다. 감칠맛 나는 육수에 면을 말고 다져서 볶은 꿩고기를 고명으로 올렸다. 꿩고기가 들어가 든든한 한 끼 식사로 먹기 좋았다. 두 번째는 꿀을 탄 오미자국에 국수를 말았다. 여기에는 노란 잣을 고명으로 얹었다. 달콤한 국물에 고소한 잣까지 곁들였으니 식사 후 후식의 개념으로 즐기기 좋았을 것이다. 이처럼 국수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입맛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국수를 먹었다.



메밀은 몸의 열을 내려주는 찬 성질의 음식이다. 한낮에는 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얼음을 동동 띄운 메밀국수로 열을 식혀보는 건 어떨까. 과거 우리 선조들처럼 다양한 육수에 나의 취향을 살린 재료를 듬뿍 올려 국수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자.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칼럼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5.25 발행)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409300005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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