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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J Oct 29. 2024

제1편. 잊힌다면, 아카이브가 아니다.

[로컬 아카이브 시리즈] 잊히지 않는 아카이브를 원합니다.

 저는 기록관리를 전공하고, 10년째 아카이브 관련한 일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아카이브에 관심 있거나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그 용례를 찾는 일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문화기관 용어에 견주어 봤을 때 ‘아카이브’는 사람마다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록관리학 범주에서 벗어나 확장된 ‘아카이브’ 쓰임새를 몇 가지로 추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무언가 기록한 결과물
2) 백업(back-up)을 목적으로 모아서 저장하는 행위
3) 외부로부터 어떤 공통 주제를 가진 자료를 발굴, 수집하는 행위 또는 그 결과물



 이전에 컬렉션이나 전시, 큐레이션이라는 용어로 많이 쓰이던 개념적 용어를 아카이브로 대체한 사례도 많이 보이지만, 본래 아카이브가 갖는 정의와는 너무 벗어난 것 같아 그런 사례들은 생략했습니다.


 살펴보면, 1번은 모음집이나 인터뷰집같이 정보를 모은 도서, 기록영상(다큐멘터리) 등입니다. 2번은 경험상 예술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초안이나 애셋(asset)을 저장해두거나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백업은 복원의 관점, 아카이브는 재연의 관점에서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이건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3번의 경우 대체로 ‘아카이브 사업’, ‘아카이빙 사업’, ‘기록화 사업’ 같은 이름으로 지자체, 재단, 문화원 등지가 발주하는 사업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보편적으로 아카이브 하면 생각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업들은 지역 문화나 역사(특히 근현대 미시사) 발굴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2010년을 전후로 국내에서는 로컬리티 기록화, 일상 아카이브, 공동체 아카이빙, 마을 아카이브와 같은 개념이 생겨 일종의 지역 기록화 운동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숱한 사업이 생기고 확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메모리나 증평군 기록관 같은 일부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결과물은 책이나 영상으로 만들어져 제작자가 만족하는 예쁜 품질의 지류에 최소 제본 가능 부수인 300부쯤 맞춰 제본한 후 제작자, 발주처 담당자, 발주처 소관 자료실, 이해관계자에게 전달하고, 누군가 목차를 읽은 다음 휙 전체를 훑어 넘겨본 후 책장에 꽂는 순간 잊힙니다.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독자 1천 명이 안 되는 지자체 유튜브 계정에 올려둔 기록영상은 매스컴이나 알고리즘을 타지 않는 이상 조회수 100 미만을 기록한 채 월평균 조회수 10 미만을 기록하다 어느 순간 원본 영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로 유튜브 서버에만 남습니다.


 포인트를 찾으셨나요? 기록화 사업의 결과물은 대체로 책과 같이 손에 잡히는 뭔가로 만들어지거나 짧은 동영상으로 제작된 다음, 채 1년이 지나지 않아서 잊히는, 즉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아카이브를 위시한 사업이 그 목표를 잘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카이브라는 말 자체가, 영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을 관리하는 장소, 부서 또는 기록 그 자체인데 말입니다.


 그냥 모으면, 아카이브가 되는 걸까요? 모아서 예쁜 책을 낼 거면, 왜 컬렉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나요? 좀 새로운 단어라 힙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카이브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아무래도 어떤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에너지를 100% 발산한 후, 아름다운 결과물이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잊힌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이 글은 필자가 2024년 8월 강서구 소식지 <방방>에 게재한 원고를 일부 편집,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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