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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리 Sep 04. 2019

생애 첫 권총

첫 번째 이야기


이른 새벽, 허름한 호텔을 나섰다.


가끔씩 이는 후끈한 바람에 쓰레기만 뒹굴거릴 뿐, 거리는 텅 비어 있다. 간밤에 식었던 공기가 벌써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너를 돌아 큰길로 나오자, 저 멀리 한 건물에서 희미한 불빛과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한 여행사 앞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손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검은색 피부의 직원이 그 사이를 지나다니며 이름을 확인했다.


"이름은 오지리, 혼자 왔습니다."





  

텅 비었던 거리에는 삐쩍 마른 개들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4륜 지프차들이 여행사 앞으로 하나 둘 도착했다.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여행객들을 가까이 불러 모으더니, 에티오피아 특유의 억양으로 유의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낮에는 40도가 넘어가니 개인당 생수를 두 통 이상 챙길 것'과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은 되도록 앞자리에 탑승할 것'을 권했다.


배정받은 지프차를 확인하고 트렁크에 짐을 싣자, 입에 담배를 문 채 운전석에 기대 있던 기사가 나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모든 여행객이 탑승하고 선두에 있던 차가 출발했다. 그 뒤를 이어, 열 가까이 되는 4륜 지프차들이 대열을 이루며 이동을 시작했다. 


얼마나 갔을까, 끝도 보이지 않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활화산을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황무지를 지나야 한다. 출발 전에 매니저가 말했던 험한 길이다. 물론 이 황무지에서 길이라고 한다면, 앞서 차가 지나간 '흔적'을 길이라 할 수 있겠다.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에 대비해 지프차들은 대열을 점검하고 일제히 비상등을 켠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 불어오는 모래 바람에 선두 차량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렇게 답답한 시야만큼이나 답답한 속도로 한 시간 넘도록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탄 차의 드라이버는 답답하다는 듯 핸들을 틀어 대열 벗어나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머지않아 심한 모래 폭풍이 불어왔고 금세 지프차 대열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이는 거라고는 바로 옆을 스쳐가는 죽은 건지 살아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가시나무들 뿐이었다. 앞자리에 탄 독일인 아저씨는 불안한 기세가 역력했다. 뒷자리에 나와 함께 앉은 그의 아들은 10대답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지금 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모래 폭풍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함께 날아든 모래가 쌓이면서 이제 길이라 부르던 '흔적'도 사라져 갔다. 자신 있게 대열에서 빠져나왔던 드라이버도 더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태양의 위치로 방향을 어림잡아 운전하는 듯했다.


퍽! 부와아앙~ 부와아아아앙






모래 구덩이에 빠진 지프차에 4륜은 별 쓸모가 없었다. 드라이버는 별 일 아니라는 듯한 제스처와 함께 엑셀을 아댔지만, 그럴수록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갈 뿐이었다.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차는 모래 속에 파묻혀서 바닥이 닿을 정도였고, 황무지 한복판에서 휴대폰 신호가 잡힐 리 없었다. 드라이버들에게 무전기가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고, 마을 하나 없는 곳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모래 폭풍은 점점 더 심해졌다.






드라이버가 차에서 내리더니 파묻힌 차 주변에 삽질을 하기 시작했고, 나도 도울 작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내리쬐는 햇볕과 40도가 넘는 온도에 달궈진 모래가 신발과 양말 속 파고들었다. 한 번 삽질을 하면 그 옆에 모래가 흘러내려오고, 그걸 다시 삽으로 퍼내며 조금씩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면 폭풍 들어 나른 모래들도 조금씩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삽질해 놓은 곳을 다시 채다.

 

그때, 저 멀리 지프차 한 대가 보였고,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냥 지나치는 줄 알았던 차는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천천히 오기 시작했다. 드라이버는 '이제 됐다'며 차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듯 내 등을 툭 쳤다. 모래와 땀에 절어 차에 오르자, 한 번도 차에서 내리지 않은 독일인 부자가 오히려 그들이 지친 기색으로 나를 쳐다봤다.


"괜찮아?", 독일인 아빠가 말했고,

"괜찮아.", 내가 대답했다.






여행사 로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 일행은 아니었다. 차가까이에 멈춰 서더니, 남성 3명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몇 년을 입었는지 모를 긴팔 셔츠는 단추를 잠그지도 않았고, 펄럭이는 치마에 쪼리를 신은 것이 현지 원주민 행색이었다. 삐쩍 말라서 뼈밖에 없었지만, 그 때문인지 뼈에 들러붙은 검은 살가죽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중 한 남자가 거들먹거리듯 다가왔다. 셔츠를 뒤로 젖히며 허리에 손을 얹그때였다.


허리춤에 꼽혀있는 권총이 번뜩였다.


"이런, 젠장!", 독일인 아빠가 말했고,

"이런, 미친!", 내가 대답했다.






그 남자는 허리에 얹은 오른손의 집게손가락으로 권총 옆구리를 탁, 탁, 치며 다가왔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 차를 한 바퀴 돌았다. 에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차 안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우선 문을 잠갔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가슴 앞으로 맸다. 옷이 많으면 총알이든 칼이든 뚫기 힘들 것 같았다. 독일인 부자는 알 수 없는 독일어로 말을 주고받았고, 나는 저들과 몸값을 협상할 때 쓸만한 현지어를 머릿속에서 최대한 끄집어내려 했지만 딴생각떠올랐다.


'칼보다는 총이 나을까.'

'그렇게 해외로 싸돌아 다니더니 기어이 객사를 하는구나.'






여행객 3명이 차 안에서 온갖 생각을 하는 사이, 그들은 드라이버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차로 돌아가 시동을 켜고 다시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걸까.


앞으로 맸던 배낭을 트렁크로 다시 집어넣고 드라이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드라이버는 웃으 말했다. 에리트리아 국경 지역인 이 곳의 현지인들은 종종 권총을 갖고 다닌다고. 아마 총알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30분이 지났을까, 여행사의 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구출되었다.


1시간 넘도록 걱정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일행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 얘깃거리 하나 생겼는데?" 내가 말했고,

"oh, yeah!" 독일인 꼬맹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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