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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리 Sep 27. 2019

늘 대문 앞에 있던 그녀가 '철거'되었다.

네 번째 이야기

퍼드득 푸드드드득 푸트트 푸흐


'하, 오늘도 안 나오는구나'


저녁에 단수가 되면 차라리 나으련만, 왜 꼭 아침에 이러는지 원. 이틀에 하루 꼴로 이러니 밤마다 2L 생수통에 물을 받아 놓고 자는 것이 일상이다. 생수통 하나를 들고 화장실에 쪼그려 앉는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가 젖을 정도로만 물을 뿌리고 샴푸칠을 한다. 물에 석회질이 많아 거품이 잘 생기지는 않지만, 그냥 그런대로 헹궈내고 남은 물로 세수를 한다. 한국에서는 샤워 한 번 하는데 몇 리터나 쓸까. 2L의 물로 씻는 걸 마무리하고 출근을 위해 대문을 나선다.






"쌀람 나쉬"

대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걸인과 인사를 나눈다. 집주인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매일 아침마다 첫인사를 나누는 사람이다. 뿌옇게 변해가는 한쪽 눈과 초점 없는 나머지 눈으로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맑은 날이면 그의 한쪽 눈이 마치 구름처럼 더 뿌옇게 보였다.

매일 같이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에티오피아이지만, 그만큼 자외선이 강해 현지인들의 백내장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되려 사람들 눈에 구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새삼 무섭다.



그녀는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나타난 시점은 아마 대문 앞에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놓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정부가 상수도 공사를 한다며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구조물은 둥근 원통 모양으로 가운데가 뚫려 있는데, 그 안에 성인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정도로 크기가 크다. 그런 구조물이 거리를 따라 스무 개가 넘게 쌓여 있는데, 그 시작 지점 혹은 그 마지막 지점이 내가 살던 집의 대문 앞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 늘 앉아 있었다.

나이는 70이 넘어 보이지만 고된 거리 생활로 아마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을 테다. 삐쩍 말라서 그런지 키는 150cm가 채 안 되어 보였고, 백내장으로 뿌옇게 변해 버린 눈에는 항상 눈물 같은 게 고여 있었다. 에티오피아 정교를 믿는지 이미 누렇게 변한 흰색 옷을 머리까지 두른 채, 땅인지 허공인지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그들을 향해 간신히 살갗만 들러붙은 팔을 삐쭉 내밀고는 위아래로 흔들며 구걸을 했다. 그리고 밤이면 잠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집은 멀지 않았다. 

몇 걸음 옆에 쌓여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안으로 기어 들어가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기어 나와 같은 자리로 가서 구걸을 했다. 간밤에 내리는 빗방울이나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주니 길바닥보다는 쾌적하다고 해야 할까. 정부가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구조물은 밤마다 그녀의 집이 되었다. 이를 보고, '주상복합이 따로 없다.'라며 웃는 동료의 농담에 함께 웃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고, 구조물은 철거되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던 그녀도 함께 사라졌다.


아니, 그녀도 함께 '철거'되었다.






아침마다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회사로 향하던 길은 노후된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만들어 낸 흙먼지로 가득했다. 그녀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라진 거리는 더 넓어졌지만, 그만큼 차들이 빠르게 달리면서 흙먼지만 더 심해졌다.


지금도 어디선가 구걸을 하고 있을 그녀는 이제 무얼 집으로 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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