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 왔던 젊은 날의 초상과 근황
지난 여름날을 떠올려 보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종종 열정의 연탄을 거세게 피우기도 했었지만 종종 재에 좀 먹는 마음을 쥐고서 꺼져가는 촛농의 마음을 느꼈다. 어떻게든 타오르려고 했으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생활 패턴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면의 날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시간을 태워버린 나에게 보상으로 결과물을 쥐여주고 싶은 충동이 더 강해졌다. (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시작을 했음에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지겨우면서도 방학 동안의 자신에 대한 혐오와 예민함을 반복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낯선 여름이었다. 생기 넘치는 추억들을 가득 채우곤 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긴장되고 생각이 무겁게 괴로웠던 계절이었다. 기회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지만, 그땐 지쳐서 가만히 누워 시간을 축내며 노력을 하는 게 귀찮고 하기 싫어졌었다.
삶에 가까운 것들과 해야 할 과업들이 다 지겹게 느껴졌는데 모든 행위들은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한 방향이고, 실패하는 것조차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걸 너무 오래간만에 깨달았다. 몸소 느꼈던 소중한 배움이다. 그저 누워서 기회를 바라기만 했었던 날들을 기억한다. 주어지면 할 텐데라는 도둑 같은 마음가짐 때문에 세상이 가파르게만 보였는 듯하다.
하루는 ‘지옥이 따로 있을까 자신을 혐오하는 것만큼의 형벌이 따로 없을 텐데.’라는 짧은 일기를 남겼다.
나도 그 지옥을 겪었기에 뱉었던 한숨 짙은 말이었다.
체벌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디 사람들이 자신에게 혐오를 건네기보다는 사랑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물론 각자의 몫의 짐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현실적이라 이름 지으면서 비관적이었던 나날이 떠오른다. 다른 이의 창을 드나들며 자주 남의 것을 탐하고 시기했다. 문을 두드렸다가도 열리질 않아 실망했던 기억들, 부지런히 시간을 이겨내 가면서도 성과가 보이지 않아 스스로를 자책했던 기억들, 다음 날의 부채 같은 과업들이 몸서리가 괴롭던 새벽녘의 기억들.
참 간사하게도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그 모든 뾰족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다듬어왔다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난 단 한순간도 멈춰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무언가라도 해보려고 움직이는 시간이 정말 값진 것이라는 걸 알고 다시 새기면서 나아가길 바란다. 삶을 비좁게 좁히지 말고, 움직임이 결국 그 지겨운 삶을 변화시킬 시초라는 걸 기억하자.
움직이고 싶은 희망이 보일 때 움직이곤 했던가, 침울하거나 굴레에 빠졌다던가 그런 것들에게서 멀리 달아나려면 기본적으로 나를 위해서 했던 행위들의 감각을 떠올려야 했다. 평범과 통상적인 것에 가까운 것들이 어려워지고 힘들어질 때 그 감각을 떠올리고 족쇄가 아닌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떠올린다.
즐거움을 주던 것들에게서 빚을 느끼기보다 행복이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그 해결되지 않을 문제를 붙잡고 있기보다 단순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것들을 더 가까이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더 한없이 유치해질 수 있고, 깊이 생각지 않아도 행복하고 사소한 것들,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 시간의 농도가 너무 매캐해지지 않게 유지했다.
여유는 만들어서라도 챙겨야 한다는 걸 올해는 너무나 크게 와닿았다. 물질적 풍요를 잃게 되는 것보다 마음의 가난이 찾아오는 게 더 두려웠던 한 해였다. 머물렀던 잔상을 기억하던 소박한 마음에서, 가지지 못한 걸 탐하는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변하기까지 일련의 시간을 돌아보면 소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한 줌의 여유를 만들어야 했음을 배웠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그 틈을 만드는 것조차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에 나는 오늘도 소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비대해진 마음의 살집을 벗겨낸다.
요즘은 정신없이 바빠 하나씩 놓치는 게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아무렴 어때’ ‘오히려 좋아’를 외치면서 내게 열린 문틈을 흘낏 훔쳐보는 중이다. 강박적이었던 완벽히 무너지고 나 자신에게 관대해졌구나. 또 많이 유연 해졌구나를 느끼는 오늘이다.
지난 계절엔 꽤나 긴장된 채로 살아왔던 것 같다. 기대했던 나의 이상적인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 때를 상상하며 자주 마음을 졸였다. 그 아무도 나의 실패에 대해서 떠들 리가 없는데 종종 그러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시달리곤 했었지 않나. 그러니 쉬는 날 없이 몰아붙이게 되는 일상이 계속될 수밖에.
그래서 그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머리가 무거워질 때면 산책을 나섰고 빈 벤치에 앉아 해가 지는 것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잠깐의 틈을 가지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지만 한 번 더 해볼까 하는 한 뼘의 용기를 얻곤 했다. 당연히 가진 게 없는 어린 날에, 잃을 것 없을 때 더 간절히 부딪혀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산책 후 돌아가는 길,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는 이완의 방법을 터득하고 나니 어렵게 느껴지던 일들이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건 시간이 굴리는 눈덩이의 몫. 나는 그저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며 하루치의 생을 살아갔다. ‘뭐든 할 수 있어’ 하는 부푼 자아가 결국 뭐든 할 수 없게 발목을 잡고 있었기도 했던 날들을 지나, 내가 그 무엇이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후회 없음으로 채워왔기에 쌓여 있던 과업들을 해치워 올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긴데, 그 시간 동안 괴롭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시간을 믿어보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보다 당장에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내 생에 주어진 소명 같은 어떠한 임무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스스로를 그리 애달프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에 내던져졌기에 묶여있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임을 기억하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유의미한 생을 살아낼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어지러웠던 날들을 풀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022.11.19 긴장과 이완에 대한 삶의 태도를 뜯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