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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 Jul 30. 2023

양압기를 끼는 아내

허니문 기간 중 내가 한 일

결혼휴가로 받은 허니문 7일 중 1박 2일을 나는 병원에서 보냈다.


사정은 이랬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남편과 나는 신혼집에 조금 일찍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편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가 건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 숙면‘인데, 숙면의 복병인 나, 구체적으로는 나의 코골이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부끄럽지만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당시 만 30세도 되지 않았었는데 시원하게 코를 고는 편이었다.

그도 피곤할 때 코를 골기도 했지만, 나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결혼 전 함께 살던 시점에 왜인지 모르게 아침에 당시의 남편이 꽁한 표정일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십중팔구 내가 코를 골아서 잠을 설친 거였다.


처음에는 내가 코를 골면 얼마나 곤다고, 하면서 버럭 하기도 했다.

코를 골면 나를 흔들어 깨우라고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때뿐이야. 3초 뒤면 바로 다시 코 골더라. “ 하며 나를 민망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큰맘 먹고 병원에서 1박 2일이 걸리는 수면다원검사를 받게 된 것이었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기계를 머리와 손톱에 끼우고 조그마한 병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 새색시라니.


어색하고 처량한 기분이라 잠도 잘 오지 않아 결국에는 의사 선생님이 수면제를 처방해 주셔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의사 선생님이 잠시 수면마취를 해서 수면 중에 내가 어떻게 코를 고는지 까지 아주 친절하게 카메라로 찍어 그 영상을 보며 내게 설명해 주셨다.


결론은 나는 경도의 수면 무호흡과 코골이가 있고, 선천적으로 구강과 목의 구조상 수술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며 양압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양압기는 코에 바람을 넣어서 코를 골지 않게 해주는 수면 보조 기계인데, 마치 ‘안경’과 같아서 끼고 있을 때는 코를 골지 않지만, 그렇다고 코골이를 완전히 치료해 주는 기계는 아니다.


처음에 양압기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난감했다. TV에서 중년 남성들이 쓰던 양압기를 써야 한다니.

얼굴에 올가미를 씌운 것 같은 답답함, 양압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코로 들어오니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도대체 이걸 끼고 어떻게 잠을 자나 싶었다. 양압기를 끼고 자야 한다는 사실에 첫날은 눈물이 났다.


그런데 며칠간 적응기를 보내고 나니 양압기를 끼고 자는 것이 한결 편안해졌다. 항상 피곤함에 절어있었는데, 전보다는 덜 피곤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은 양압기를 빼고 자고 싶기도 했다. 지금은 양압기를 잘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몇 개월마다 병원에 방문해서 양압기를 잘 쓰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보험료 기준을 통과해야만 보험 처리가 되는지라, 번거롭고 또 번거로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은 행복하다. 양압기를 쓰면 내가 정말 조용히 잔다고 한다.  

밤마다 남편은 자기 직전에 꼭 양압기 마스크를 내 얼굴에 채워준다. 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본인의 숙면을 위한 루틴일까?

아무튼 양압기를 끼고 자는 꼴은 만화 속의 빌런 같은 모습인데, 그에게는 ‘남편을 위해서 매일 밤 불편함을 감내하는 배려가 넘치는 아내’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양압기를 끼워줄 때마다 조금은 신난듯한 그의 모습을 보면 얄밉기도 하다. 그래도 내 양압기 관리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매일 밤마다 양압기에 넣는 물을 갈고 주기적으로 호스를 청소하는 그를 보면 얄미움이 조금은 가신다.


그 이후로, 누군가 코를 고는 남편/아내로 괴로워할 때면 양압기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서로의 배려로 가정의 평화와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길이라고. 대신 양압기를 착용하고 자는 배우자의 불편함도 꼭, 이해해 달라고 당부한다.


양압기를 낀 내 모습은 여전히 웃기고 이상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남편과 나의 숙면을 챙기게 되었으니, 한 침대에서 평생 얼굴을 나란히 하고 꿈나라에 가기 위한 장애물 하나는  해결했다.

허니문 기간 동안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나, 허니문에서 제일 중요한 걸 챙겼으니 스스로 조금은 대견해도 될 것 같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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