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몫의 행복, 빼앗길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정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원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 수도 있고, 반대로 별모양, 하트모양의 나무와 조각상, 분수가 있는 모습일 수도 있다. 20대의 나는 크고 멋진 정원을 가진 사람이 승리자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오는 버킹엄 궁전, 부처드 가든, 베르사유 정원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조형물로 그 공간을 꽉꽉 매워야 비로소 명실상부 "행복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조금 바뀐 것 같다. 사람들은 멋진 정원을 동경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고 칭송을 보내는 건 겨우 한나절, 반나절에 불과하다. 오히려 사람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 생활 면면에서 즐거움을 주는 건 각자의 정원이다. 한 뼘 텃밭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작물을 키운 곳, 가끔은 아무것도 키우지 않고 흙을 쉬게 해주는 곳, 과일 없이 그저 아름드리 한 그루 나무만 있지만, 오며 가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정원이 있고, 거기에는 우열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 뭐라고 하더라도 나만의 정원에서 느끼는 행복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예전의 나는 남들이 멋진 정원을 가꾸는 것을 보면서, 마치 나의 정원이 침범당하는 느낌을 가지곤 했다. 옹졸한 생각이지만 그랬다. 또 남들이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면서 나의 정원의 부족함을 지적하면 마치 그 말이 지극히 사실인 것처럼 당연하게 마음에 새기면서 나에 대한 의기소침함만 가지곤 했다. 그런데... 내가 못나다고 생각했던 내 정원은 항상 거기 있었다. 남들의 정원을 감탄하며 구경하기 바쁜 나의 시간 속에서, 내 관심을 기다리면서 , 예쁜 모습으로. 내가 의자를 놓고 햇볕을 쬘 수 있는 곳. 책을 읽으면서 토마토 한 방울을 따먹을 수 있는 곳은 항상 그곳이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내 정원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겁을 주는 못된 목소리에 크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정원은 그 사람의 취향대로 가꾸면 되는 것이고, 내 정원은 어떤 모습이든 내 취향대로 가꾸면 좋은 것이다. 무슨 꽃을 심으면 좋다더라, 올해는 어떤 과일이 잘 난다더라는 말도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직접 심어 보고 겪어보는 건 그 사람의 몫이라는 것. 그리고 하릴없이 텅 비어있는 땅도 돌을 골라내고, 조금씩 가꾸다 보면 비옥한 땅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내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을 남에게 쉽게 넘기고 싶지 않다. 차라리 빈 땅으로 남기더라도, 그곳은 온전히
내가 가꿔 나가고 싶다.
사진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