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들 (ep 1)

코웃음을 치던 시간

by 영씨

징후들은 이미 있었다.

1년 전에, 회사에서 복지로 제공하는 상담기관에 갔다.

절반은 내가 담당하고 있던 업무와 연관된 직원이 너무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던 상황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설마 그 사람이 어떤 일이 저지르지 않을까, 하던 마음이었다.


절반은 회사 복지이니까 받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상담선생님은 번아웃이 오면 아무 일도 못하니 그전에 꼭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건 그렇지, 머리로는 잘 이해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회사에 큰일이 생겨 1년짜리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상담은 중도에 그만두었다.


한 3-4개월 되었을까.

일요일마다 잠을 잘 수 없어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어났다. 잠들려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기 때문에, 그냥 서재방에서 회사일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버틸 수 있는 시간까지 버티다가 새벽 4-5시 즈음 선잠을 자고 회사로 출근했다. 나의 월요병 퇴치방법이었다.


비몽사몽 월요일을 보내고 나면 그럭저럭 할만했다. 주말이 빨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거실에 내가 지쳐 잠들 수 있는 간이 매트리스를 설치해 주었다.


매일 택시를 타고 회사로 출근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다소 어정쩡한 거리여서 택시를 타도 요금이 감당할만했다. 퇴근길에는 지하철을 타거나, 아니면 야근택시를타곤 했다. 하지만 도저히 출근은 두 발로 할 수 없었다.게으르지만 어떡해. 그만두는 것보다는 낫잖아,라고 생각했다. 게으름 때문에 헛돈 쓰네,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가 늘어났다. 선의로 한 아주 작은 일도 부장의 심기를 건드려 그가 나를 추궁하면 바로 죄송합니다가 튀어나왔다. 그는 내가 실무자와 의견을 나누는 미팅을 잡는 것도 본인의 허락 없이 하는 것은 참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논의하라고 한 주제임에도 말이다.


“제가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계속 튀어나왔다.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팀장은 나에게 ”부장이 왜 화내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미안하다고 하고 잊어“라고 헀다. 나도 동의했다.


유관부서와 업무를 할때도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때때로 힘든 날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갑갑하고 두 손 두 발이 묶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날엔 폭식을 했다. 밤늦게 먹는 컵라면이라니 절제력도 없네생각했다. 최근 1년 사이 10kg가 쪘다.


어느순간 머리가 멈춘 듯했다. 머리가 뿌옇고 두통인지뭔지모를 이상한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꽉 쥐고있는것같았다. 집중도 못하는 나에게 실망을 느끼고 오트라떼에는 꼭 샷을 추가했다.

집중이 안되기 시작하자 퇴근 시간은 늦어지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새벽에 커피를 시켜먹는 날이 생겼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일하던 팀원의 절반이 퇴사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텼고 새로운 직원도 입사했다. 목표했던 근속기간을 몇달만 있으면 채운다고 생각했다.


번아웃, 번아웃. 그런 말들이 너무 싫었다.

진짜 힘든 사람은 퇴사하겠지.

진짜 절이 싫은 중은 떠나는거야. 안 떠나는건 절이 그래도 좋은 것 아니겠어? 하고 생각했다.

게으른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서 펜대를 굴리다가 아하,하고 만들었을거같은 용어에 현혹되기 싫었다.

코웃음을 쳤다.


그 즈음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잘 모르겠다, 는 것이었다.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