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제가 필요합니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는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 중에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떠오르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휘젓는다. 가끔은 아예 담배연기라도 쫓아내듯 손을 휘휘 흔들기도 한다. 회의자리에서 내가 뱉은 말의 묘한 부끄러움, 걱정거리, 회사에서 오간 말들의 행간…
불 꺼진 향의 연기를 쫓아내듯 생각들을 내 머리 밖으로 내보내본다. 하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회사 독”
내가 이 이상한 기분을 부르는 단어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크고 작은 회사 독이 내 몸에 퍼진다. 퇴근 후 저녁밥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윽!”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회사 독이 가시지 않은 거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퇴근하는 순간 모든 일과 관련된 스위치가 꺼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일정량의 회사 독은 임금과 노동력을 교환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래서 회사원에게는 해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에 회사의 차장님은 퇴근 후에는 무조건 만보를 걷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퇴근 후에 강아지의 발바닥 냄새를 10분은 맡기도 한다. 나의 남편은 수건 개기, 빨래 널기 같은 가사 일을하며 해독을 한다(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나 그는 그렇다고 한다). 맥주 한 캔을 뜯고 멍하게 TV를 보면서 누워있는 아빠들의 모습은 사실 “해독 중”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독을 하고 나면, 회사에서의 강렬했던 감정들이 희석되고, 김 대리, 임 부장도 아닌 그냥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동안 나는 해독하는 방법을 잊었었다. 회사 독이 차오를 대로 차올라서 길을 걷다가도, 잠들기 직전에도 회사 일을 곱씹고는 했다. 그러다가 마음의 바닥까지도 느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하루치의 해독만큼은 꼭 해야 한다는 거다. 독이 다 퍼지고 난 뒤 해독제를 사용하는 걸론 부족하다. 그날 어치의 해독은 그날 해야 한다.
나의 해독 방법은 숨차는 운동을 하는 거였던 것이 기억났다. 다시 달리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