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유산
로마에서 4박 5일을 지내면서 로마, 바티칸, 남부 투어까지 야무지게 마치고 큰 28인치 캐리어와 함께 트랜이탈리아에 몸을 실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기차 창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바라보며 ‘와 이탈리아 너무 좋아’를 속으로 백번은 외친 듯하다. 이렇듯 나는 여행중엔 호들갑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태리에 와서 ‘흥 별로야’ 하며 콧방귀 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누군가 내게 다녀본 여행지 중 역대급 여행지가 어디였느냐 묻노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탈리아 피렌체라고 대답할 것이다. 최근에 다녀온 스페인의 세비야는 피렌체와 견줄만한 도시지만 그래도 피렌체는 아마 늘 내 생에 가장 잊지 못할 도시 넘버원일 것이다. 마치 멈춰버린 과거를 걷는 듯 한 도시, 평범한 경험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어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미식가의 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오감을 자극하는 요리들, 렌트카를 타고 피렌체 근교를 나갈 때 보던 푸른 자연경관과 그때 심장 터지도록 설렜던 순간 등등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한 순간을 피렌체에서 경험했다. 귀국 후, 그 좋은 기억들을 발판으로 때론 단조롭고 의미 없다고 느낀 일상들을 버텨낼 만한 버팀목이 되었다.
피렌체는 ‘같은 여행지는 재방문하지 않는다’라는 나의 여행 철칙을 완전히 부셔버렸다. 그렇게 나는 귀국 후 반년 동안 이탈리아를 그리워하다가 ‘겨울의 이태리를 느꼈으니 여름의 이태리도 느껴봐야 한다’라고 외치며 이태리행 비행기표를 또 사고야 만다.
피렌체 사진들을 다시 보니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좋다. 사색에 잠기기 딱 좋은 아르노 강을 바라보며 걷던 다리 폰테 베키오를 걸을 땐 금방이라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이 느낌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나 보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사랑이야기에도 폰테 베키오가 등장한다. 단테는 그가 평생을 사모한 여인 베아트리체를 평생 딱 두 번을 마주하는데 두 번 모두 베키오 다리에서 마주한다. 하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열렬히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서로 결혼은 다른 사람과 하고 몇 년 후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충격에 빠진 단테는 남은 여생 또한 그녀를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
너의 서른 번째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준세이와 아오이의 대화이다. 그들은 정말로 두오모에서 극적인 만남을 하게 되고 그 때문인지 두오모 쿠폴라는 모든 연인들의 성지로 유명하다. 피렌체에 방문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우스개 소리로 그들의 준세이와 아오이를 찾겠다고 심심찮게 말하곤 한다. 그리고 대다수는 마치 관습처럼 영화 속 유명 OST를 들으며 쿠폴로로 향한다.
미켈란젤로는 “성당을 더 크게 지을 순 있어도 더 아름답게 지을 순 없다” 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 화려할 순 없다고 확신할 정도로 크고 웅장한 두오모. 아직도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그 이름 두오모.
피렌체에서 추천하고 싶은 레스토랑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자 (Zaza) 레스토랑이다. 피렌체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이 식당은 한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피렌체의 명물 ‘티본스테이크’ 그리고 자자의 머스트잇 (Must eat) ‘라비올리’를 강추한다. 이탈리아의 손맛을 십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자 레스토랑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자자레스토랑의 라비올리가 그립다면 소격동에 위치한 이태리 레스토랑 ‘이태리재’ 를 방문하자. 이태리재의 감자 뇨끼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데 이태리 현지음식 만큼 맛있고 꾸덕한 라비올리를 맛볼 수 있어서 잠시나마 피렌체로 돌아온것 같은 환상에 빠질 수 있다.
자자레스토랑에서 거하게 한 끼를 먹고 나면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럴 땐 운동삼아 소화도 시킬 겸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하면 된다. 언덕이기 때문에 경사가 좀 있는 길인데 체력소모를 요하기 때문에 소화도 금방 되고 가는 길 또한 중세시대 느낌의 골목골목을 지나가기 때문에 눈요기에도 충분하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하는 여정만큼은 꼭 도보를 권하고 싶다.
피렌체는 도시가 굉장히 아기자기해서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지 않아도 거진 모든 곳을 두 발로 걸어 가기에 무리가 없다. 하도 여러군데를 다녔더니 아직도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Santa Maria Novella, SMN) 역에서 숙소 그리고 유명 관광지들까지의 길이 훤하다. 길치인 내가 유일하게 구글맵 없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많은 도시 피렌체에서 가슴 따뜻한 사랑을 많이 느끼고 왔다. 운전을 할 때 가끔 멍때릴 때가 있는데 그때 이따금씩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석양을 바라보던 때가 떠오를 때면 참 좋다. 가끔 한번씩 꺼내보고 미소지을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건 참 행운인 일이다. 앞으로도 좋은 추억을 많아 쌓아서 내 기억과 추억들을 더 풍요롭게 해 줘야겠다.
고마워 피렌체 너는 나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