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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pr 23. 2021

뿔난 동생

고통 없이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러고 싶어. 동생과 나는 종종 그런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고 그 말에 동감한다.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절망적으로 세상을 비관하는 말. 가만히 있다가 누가 먼저 툭 아무렇지도 않게. 컴컴한 방 안에 둘이 누워 잠들기 전 대화를 나눈 지난밤도 그랬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어두운 마음을 함축된 몇 마디의 말로 꺼내어 보이는 순간. 그런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걱정하거나 내 표정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내가 혈육에게 새삼스레 친밀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 염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우리는, 누가 들으면 놀랄만한 그런 말들도 서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수준에 다다랐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고 나도 그래.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공감하는 것이 우리만의 대화이자 위로 방식이 된 것 같다.


동생과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동생은 나보다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훨씬 익숙하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보다 예민하고 훨씬 감정 기복이 심했던 동생은, 사소한 이유로 분노해서 흥분했다가 금세 차분해지고, 또 어느 날은 알 수 없이 기분이 좋아 먼저 언니 언니 거리면서 방방 거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불안해져서 완전히 질색을 했었다.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는 탓에 엄마와도 격한 다툼이 잦았다. 식구들 사이에서도 조금은 유별난 취급을 받았고, 그렇게 치부하는 게 편하니까 나도 방관했다. 엄마는 자기도 동생에게 화가 나면 못 참으면서 나한테는 네가 참으라고 했다. 네가 건드리지 말고 상대하지 않으면, 그러면 싸움이 안 된다고 수 없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나도 참지 않았다.


고지식했던 어린 날의 나는 동생에게 사춘기 씨게 온 비정상이라고 험악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언쟁이 몸싸움으로 번지던 날들이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수없이 많았고, 동생과 내 감정의 골이 아주 깊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저주의 말을 퍼부어 댔고 그중에 특히 내 가슴에 박힌 말들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랑곳 않고 철없는 동생이라고 흉을 보며 주위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나와 싸우다가 동생이 제 분에 못 이겨 방문을 부쉈던 일, 동생이 물건을 던져서 엄마가 아끼던 60인치 텔레비전을 깨버린 이야기는 아직까지 우리 가족에게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그래 우리 형편에 무슨 이런 텔레비전이겠냐, 엄마는 속상해하다 진짜로 눈물을 보였었다. 그리고 내 적은 머리숱은 동생에게 하도 쥐어뜯겨서 나중에 탈모에 걸리면 이놈이 10%는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싸울 때면 동생은 늘 감정이 앞서 따박따박 말대꾸하기를 포기하고 뭘 집어들거나 손부터 들었다.


그런 동생을 나와는 다른 부류라고 여기며 지독히도 싫어하곤 했는데. 표현의 여부와 표출 방식만 다를 뿐 내 마음속의 오르내림은 내가 미워하던 동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한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스스럼이 없는 그녀가 훨씬 건강한 면도 있다. 나의 성장과정도 나름대로 감수성 짙은 시기를 거쳐 왔지만 아무래도 나는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애틋함과 분노, 벅참과 불안, 소속감과 외로움.. 나이가 들수록 내가 경험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졌고, 그 사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감정의 실체를 겪어내기 전에 혼란과 당혹스러움이 앞서니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양극단의 감정을 경험해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동생의 어리숙한 절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동생은 내가 이제서야 경험하는 감정의 간극을 조금 더 빨리, 남들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여전히 그녀의 과격한 표현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본질의 감정에는 조금 다가간 느낌이다. 역시 실제로 경험한 영역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수준은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부쩍 최근에는 무의식적으로 동생에게서 나와의 공통점을 찾으며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서 내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만큼, 동생은 그 시간을 지나며 성장해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꽤나 잘 다루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하고 정리하며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안다. 그리고 더 자주 웃는다. 지나치게 여려서 지나치게 모가 난 탓에,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 할까. 좀처럼 적당한 타협을 모르는 동생이 걱정되기도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나에게만 유독 뾰족한 것뿐이었다.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적당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줄도 알고, 집에 종종 데려오는 친한 친구도 있다. 끈기 없이 겉핥기로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것 같았던 시도들 끝에 자기 진로를 찾아내 이제는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반대로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의 자극에 더 나약해졌고 자책이 심해졌다. 살아낼수록 내 길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 잘난 척 동생에게 훈계질하기 좋아했던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인생의 조언을 구하고 싶을 만큼 동생을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네가 필요해라는 직설적인 말 대신, 자꾸만 말을 걸고, 친한 척을 하며 질척댄다. 그런 나를 동생은 매우 귀찮아한다. 무기력하게 방 안에 누워만 있던 내게, (그저 그녀가 기분 좋은 어느 날일 뿐이었지만) 날씨가 좋으니 맛있는 거 먹으러 밖에 나가자는 제안이 응원으로 와닿았다는 걸 동생은 알까.


나는 이제 동생을 좀 좋아하게 됐다. 어렸을 때의 나는 동생들을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솔직히 못되게 말하면 남들은 없거나 하나만 있는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귀찮았고, 나는 늘 동생을 챙겨야 하는 존재였으니 그들이 짐처럼 여겨질 때가 더 많았다. 그런 심리적 부담감에 대한 반항으로 일부러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장녀의 역할을 거부했고 동생에게 무관심했다. 그런데 동생들이 크고 나니 어딘가 친구처럼 느껴져서인지 퍽 귀여울 때가 많다. 서먹하고 엄격했던 부모가 장성한 자식에게 억지로 유대감을 바라는 기분이 이런 걸까? 가끔은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친한 친구들과 너무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고 들떠있는 동생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귀가한 동생에 대한 반가움의 표현이다. 동생은 내 의도를 알면서도 (자기가 먼저 말을 걸어놓고도) 대꾸하길 엄청 싫어한다.

-어디서 먹었는데? 누구랑 먹었는데?

-진짜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물어봐? 귀찮아 죽겠어. 누군지 말하면 알아?

-아니 좀 물어볼 수도 있지. 내가 뭐 참견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누구랑 뭐 했나 보다 하고 넘길 수 있는데 네가 숨기니까 더 궁금하잖아.

-대답하면 또 내 말 따라 하면서 놀릴 거잖아. 대답 안 하면 왜 대답 안 하냐고 귀찮게 할 거고.

너무 정확해서 찔렸다. 동생이  말을 얼굴 구겨 이상한 말투로 따라 하는 악취미를 갖고 있긴 하다. 나는 10 5 정도로 놀린다고 생각하는데 동생은 10 9 느낀단다. 매번 똑같은 유치한 장난인데 매번 똑같이 발끈하는 반응을 보는  너무 재미있다. 내가 그러고 깔깔대고 있으면 동생이  흘겨보면서 재밌냐? 하고 끝나는 식이다. (가끔은 이러다 진짜 싸우기도 했다.) 동생이 똑같은 장난을 했을 때는 같이  따라하기 배틀을 뜨거나 최대한 시큰둥한 반응을 해주고  김샌 표정을 보면서 즐거워하면 된다. 나의 이런 궂은 모습은 아마 동생에게만 보이는  같다.


아무튼 동생은 여전히 나를 싫어한다. 딱히 나를 싫어하고 싶지 않고, 싫어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유독 언니한테만 반응이 날카로운 자신을 돌아보면 진짜 그런 것 같긴 한다나? 큰 사건은 없는데 자잘하게 싸워 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그런지 남들이 하면 그냥 넘길 말도 언니가 하면 너무 재수 없다고 너무 밉다고 한다.

증오 섞인 표현은 하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타격감 제로다. 동생이 날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쯤이야 이미 알던 사실이고, 나도 그걸 깔끔히 인정하고 나니 별로 상처될 것도 없다.


-넌 사실 내가 친한 척하는 게 불편한 거 아니야?

-사실 우리 안 친하잖아.

-음 그건 맞네. 근데 꼭 자매 사이에 친하다는 게 친구처럼 친해야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난 다르다고 생각해.

정곡을 찌르니 곰곰이 생각하다 그게 맞는 것 같다고 내가 왜 언니를 싫어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한다. 나도 이제 동생을 덜 놀리고 덜 괴롭히겠다고(?) 말했다. 그만 두긴 너무 재밌어...


-언니랑 나는 너무 달라. 진짜 안 맞아.

-나는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문제야.


동생과 나는 아직도 친해지는 중, 아니 편해지는 중이다.


나와 같은 종류의 무기력을 주기적으로 앓는다고 생각했던 동생은, 요즈음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해낸다. 꼬박꼬박 일찍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부지런히 아침 식사까지 챙겨 먹고 출근한다. 그 모습을 소파에 누워서 지켜보다가 묘한 이질감과 부러움을 느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생은 지난밤에는 기분이 좋았는지 이러저러한 삶의 작은 계획들을 들려줬다. 혼자 성장한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뿌듯함의 양가감정. 그리고 나도 적어도 한심한 언니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그러니까 방 청소 열심히 해서 동생 잔소리라도 덜 듣는 언니가 되자는 게 결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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