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가 노만 69
"영화의 발달과 함께 관객의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스타.씨스템이었읍니다. 이 스타.씨스템은 20세기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배우의 역사란 극히 짧은 것이나, 기라성과 같이 수많은 배우가 그동안 은막에 등장했읍니다.
처음 미남 미녀의 스타.씨스템이 이루어진 것은 그 당시 관객의 요구에 의하여 등장하였으나, 배우들의 그 성격에 있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 가고 있읍니다. 오늘날에는 배우에게 관객은 개성과 빼어난 연기력을 요구하게 됨에 따라 차츰 미념 미녀의 스타.씨스템은 무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란 곧 신격화된 우상으로, 관객은 무조건 이러한 배우들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입니다. 비록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배우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나, 여전히 관객들은 신격화된 우상으로 향수와 동경의 대상으로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우 70인을 선정한 것도 이러한 계열에 속하는 배우들입니다. 그 중에는 이미 이 세상과는 인연을 끊어버린 배우도 있고 은막에 은퇴한 배우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들(관객)에게 남겨준 커다란 마음의 양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또 이 70인 가운다는 앞으로 가장 큰 가능성을 내포한 신인들도 몇 사람 넣었음을 부기해둡니다.
여기에 수록한 배우 70인은 영화배우사(史)에 길이 남을 인물을 중심으로 선정한 것은 물론입니다.
이렇게 선정한 배우 70인은 '위인신서'로 출판되는 것이므로 주로 생애를 중심으로 하여 엮어 보았읍니다." (9~10쪽)
책에서 다룬 70인의 남녀 배우들은 어디까지나 할리우드나 유럽 배우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배우로는 나운규 한 사람 쯤은 다루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충분한 자료를 입수할 수 없어 포기했다. 목차는 알파벳 A부터 Z순으로, 앨런 래드(Alan Ladd)를 시작으로 율 브리너(Yul Brynner)로 마무리되었다. 알렉 기네스, 오드리 헵번, 에바 가드너, 빙 크로스비, 버트 랭카스터, 버스터 키튼, 캐리 그랜트, 찰리 채플린, 찰톤 헤스턴, 클라크 게이블, 데보라 카, 엘리자베스 테일러, 프랭크 시나트라, 게리 쿠퍼, 지나 롤로브리지다, 줄리에트 마시타, 글렌 포드, 그레타 가르보, 잉그리드 버그만, 존 웨인, 로렌스 올리비에, 마릴린 먼로, 루돌프 발렌티노, 소피아 로렌, 타이론 파워, 윌리엄 홀덴 등. 당시 국내에 수입, 개봉되어 인기를 끈 외화 배우들을 위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출생과 영화계 입문, 활동 이력을 비롯한 생애 전반을 개괄했다.
책이 나오자 친하게 지내던 영화감독 이경식이 이 책을 보곤 "배우가 어떻게 '위인'이 되냐?"며 한참 웃었다. 영화 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영화를 '활동사진'으로, 배우나 감독, 영화인들은 '딴따라'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뛰어난 창작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로 주목하고 그 업적과 의미를 주목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그때만 해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