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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Oct 30. 2024

『세계의 명배우 70인』

영화사가 노만 69

노만의 세계의 명배우 70인(여원사, 1960) 표지. '여원위인신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듬해인 1960년 8월 두 번째 단행본인 『세계의 명배우 70인』이 여원사에서 출간되었다. 『다시 보고싶은 영화』가 예상 밖의 반응을 거둔 것에서 비롯되었다. 여원사는 세계의 소설가, 정치가, 사업가, 철학가, 음악가, 과학기, 미술가, 시인, 교육가 등 총 10권의 '세계의 위인 신서' 시리즈를 기획했다. 세계 유명 인물들을 각 분야별로 선정하여 이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영화 배우들을 다루는 단행본의 집필을 맡았다. 『다시 보고싶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여원사 기자로 있던 아내 엄경은과 문리대 국문과 선배였던 여원사 주간 고정기의 도움이 컸다. 70인의 남녀 영화 배우들을 선정한 다음 자료 수집과 집필에는 약 6개월 가량 소요되었다. 영화 잡지 재직 시절 수집해둔 기사와 프로그램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영화 잡지가 주요 참고 자료였다. 본격적으로 영화 배우와 그들의 일대기를 모아 정리한 단행본으로는 내 책이 최초였을 것이다.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영화의 발달과 함께 관객의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스타.씨스템이었읍니다. 이 스타.씨스템은 20세기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배우의 역사란 극히 짧은 것이나, 기라성과 같이 수많은 배우가 그동안 은막에 등장했읍니다. 

처음 미남 미녀의 스타.씨스템이 이루어진 것은 그 당시 관객의 요구에 의하여 등장하였으나, 배우들의 그 성격에 있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 가고 있읍니다. 오늘날에는 배우에게 관객은 개성과 빼어난 연기력을 요구하게 됨에 따라 차츰 미념 미녀의 스타.씨스템은 무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란 곧 신격화된 우상으로, 관객은 무조건 이러한 배우들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입니다. 비록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배우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나, 여전히 관객들은 신격화된 우상으로 향수와 동경의 대상으로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우 70인을 선정한 것도 이러한 계열에 속하는 배우들입니다. 그 중에는 이미 이 세상과는 인연을 끊어버린 배우도 있고 은막에 은퇴한 배우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들(관객)에게 남겨준 커다란 마음의 양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또 이 70인 가운다는 앞으로 가장 큰 가능성을 내포한 신인들도 몇 사람 넣었음을 부기해둡니다.

여기에 수록한 배우 70인은 영화배우사(史)에 길이 남을 인물을 중심으로 선정한 것은 물론입니다.

이렇게 선정한 배우 70인은 '위인신서'로 출판되는 것이므로 주로 생애를 중심으로 하여 엮어 보았읍니다." (9~10쪽)


책에서 다룬 70인의 남녀 배우들은 어디까지나 할리우드나 유럽 배우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배우로는 나운규 한 사람 쯤은 다루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충분한 자료를 입수할 수 없어 포기했다. 목차는 알파벳 A부터 Z순으로, 앨런 래드(Alan Ladd)를 시작으로 율 브리너(Yul Brynner)로 마무리되었다. 알렉 기네스, 오드리 헵번, 에바 가드너, 빙 크로스비, 버트 랭카스터, 버스터 키튼, 캐리 그랜트, 찰리 채플린, 찰톤 헤스턴, 클라크 게이블, 데보라 카, 엘리자베스 테일러, 프랭크 시나트라, 게리 쿠퍼, 지나 롤로브리지다, 줄리에트 마시타, 글렌 포드, 그레타 가르보, 잉그리드 버그만, 존 웨인, 로렌스 올리비에, 마릴린 먼로, 루돌프 발렌티노, 소피아 로렌, 타이론 파워, 윌리엄 홀덴 등. 당시 국내에 수입, 개봉되어 인기를 끈 외화 배우들을 위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출생과 영화계 입문, 활동 이력을 비롯한 생애 전반을 개괄했다.

책이 나오자 친하게 지내던 영화감독 이경식이 이 책을 보곤 "배우가 어떻게 '위인'이 되냐?"며 한참 웃었다. 영화 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영화를 '활동사진'으로, 배우나 감독, 영화인들은 '딴따라'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뛰어난 창작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로 주목하고 그 업적과 의미를 주목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그때만 해도 그랬다. 

돌이켜보니,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영화 평론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배우론을 썼다. 영화 잡지 초년병 기자 시절에는 명동 다방에서 알게된 영화인들을 직접 탐방하는 기사를 간간히 썼다. 본격적인 저술가로 나선 뒤로는 할리우드나 유럽 영화 배우들의 활동상을 주목한 글을 잡지 <여원>에 기고했다. 대표적으로 1962년 마릴린 먼로가 타계했을 때 그에 맞추어 그녀의 생애를 주목하는 기사를, 그 외로 브리짓드 바르도, 자클린 사사르에 대해 썼다. 1964년에는 <실버스크린>에 <한국영화배우변천사>로 한국영화사에서 등장한 배우들을 통사적으로 다루어본 적도 있다. 이 무렵 김인걸 원장이 운영하던 한국배우전문학원에 강사로 출강하여 신인 연기 지망생들에게 한국영화사를 강의한 것으로도 이어졌다.

내가 최고로 꼽는 배우라면, 외국 배우로는 제임스 메이슨, 한국 배우로는 허장강이다. 특히 제임스 메이슨은 대학 시절 동도극장에서 본 <심야의 탈주>(1948)에서 보여준 내면 연기가 너무나 강렬했기에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다. 허장강의 연기는 특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악역 연기에도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그만이 갖는 묘한 매력이 개성적으로 다가왔다.

『세계의 명배우 70인』은 10여년 뒤인 1974년 '신문화사'라는 출판사에서 재간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 책은 표지만 바꾸어 초판 판형을 그대로 낸 해적판이었다. 저자인 나는 당시에도 전혀 모르던 일이었다. 아마 여원사가 사라지면서 단행본의 판권이 표류하면서 '세계인물총서'라는 이름으로 다른 시리즈들과 함께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1974년 신문화사에서 출간된 세계의 명배우 70인. 일종의 해적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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