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좋아하는 배우만을 무턱대고 선택할 수 없는 일이고 보니, 머리를 싸매고 각국의 대표적인 배우를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별로 뽑아 놓았으나 그 가운데는 우리나라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사망한 사람도 끼었으니 이를 어찌하랴!
결국 독자의 편의를 생각해서 될 수 있으면 알려졌고 생존한 분을 택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미국 배우에 치우친 감이 농후했다. 그 후 몇 분이 한국 배우 한 사람 정도라도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고마운 충고를 주셨지만--.
배우의 생명이 연기에 있고 또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배우와 연기자는 다른 의미에서 불리워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우라고 하면 그들 자신이 언짢은 얼굴을 하지만 과연 몇 사람의 연기가 있는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한 사람이 한꺼번이 7, 8편 심하면 10여편 작품에 출연 계약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한다.
소위 이 겹치기 출연은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냥 둔감하지는 않다.
입버릇처럼 일년에 두서너 작품만 하고 쉬었으면-- 하는 소리는 기회 있을때 마다 뇌까리고 있는 그네들이다.
물론 겹치기 출연을 않을 수 없는 환경은 십분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그러나 작품에 임하는 태도는 아직도 요원하다. 촬영 현장에 와서조차 자기 역할의 대사(다이알로그)를 모른다니, 이건 말이 안된다. 다행히도 동시 녹음이 아니고 후시녹음(後時錄音)이니 망정이지......
그건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연기자'는 외국의 '제임스.메이슨'이다. '메이슨'에게 매혹되긴 <판도라>에서부터였다. 방랑하는 화란인으로 분장한 '메이슨'은 시비로운 목소리에서부터 모든 것이 가슴 속에 축축히 파고들었다.
<심야의 탈주 Odd Man Out>에서 역시 그랬다. 비록 살인 강도이긴 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당이라고나 할까.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 조차도 그대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 신비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판도라>, <심야의 탈주> 이래 한국영화를 보면서 가끔 나는 '메이슨'을 연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허장강(許長江)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폭군연산>에서라든지 <상록수>에서의 허장강은 어딘지 모르게 내 가슴을 축축히 적셔주었다.
'메이슨'과 허장강의 세계는 다르지만(특히 그 마스크에서) 인생을 체념한 듯 한 공허한 웃음 같은 것은 전연 그 '이미지'가 틀리다곤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