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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ventureJIEUN Aug 14. 2019

로봇이 되고 싶었다

감정 없이 살아가고 싶었던 지난날의 고백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로봇이 되고 싶었다. 로봇이 되어서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가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압박감과 스트레스, 집안에서의 비롯되는 스트레스, 내 주변을 맴도는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이 와도 로봇처럼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행복이라는 감정을 못 느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그런 시기가 다들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 모두 그 순간에 갑자기 빠져들어 버리게 된다. 모든 것이 버겁고 모든 것이 힘들다. 갑질 하는 거래처를 상대하는 것도, 억울한 상황에 빠져 다른 사람의 욕을 대신 먹는 것도, 잘 안 풀리는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나 역시도 그랬다. 결재받아야 하는 나만 동동거리고 윗선에서는 결재를 안 내리고, 결재가 안 내려오면 그 화살은 모두 나에게 돌아오고, 거래처에서 준 마감일은 턱없이 부족하고, 각종 미팅에 알앤디까지 모든 것이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그렇다고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었다. 사정상 할머니와 방을 같이 사용해야 했고 방문은 미닫이 문이라 거실밖에 소리가 다 들렸다.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지 못했다. 그래서 감정 없는 로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긴 있었는데, 바로 2층 침대에 올라가 엎드리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아래가 보이지 않고 천장만이 나를 보고 있으니 그래도 나만 이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에서 나를 짓누르던 무겁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책을 통해 유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너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책조차 쳐다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고, 사사건건 작가의 말에 토를 달고 싶어 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낸 책을 찾아 읽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지는 글을 읽고 그 글 속에 빠져 한바탕 울어재끼면 속이 시원했다. 물론 그래도 아침에 출근하고 나면 여전히 같은 상황은 반복되지만, 하루 중에서 좋아하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로봇병이 치유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책을 읽고 마음대로 감정표출이 가능한 공간에서 내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을 뿐인데 말이다.

나의 아늑한 2층 침대

 나는 정말 감정적인 사람이다. 행복한 감정들도 부끄럼 없이 좋다고 표현하고, 좋지 않은 일에도 화를 잘 참지 못한다. 그래서 감정적이기에, 나에게는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칼 같은 사회의 무리를 쫒고 싶고, 그들처럼 냉철하게 모든 것을 판단하고 동요 없이 뚝딱 모든 일을 처리하고 싶었었나 보다. 그래서 로봇이라는 틀에 나를 맞춰서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넣어버렸고 결국 2층 침대 위에서 그 틀에 박혀있던 로봇 속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많지만 좋지 않은 일도 많다. 특히나 일을 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솟을 때가 많은데,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느낀건 이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나를 공격할 이유나 다그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넌 로봇이 돼서 아무 감정 없이 일해야 돼, 그래야 편한 거고 그게 감정을 잘 다스린 거야.' 이 얼마나 철없고 바보 같았던 내 지난날의 생각인가. 로봇병에 걸려버린 나의 20대 첫 사회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필수적이다. 내가 불쾌하고 부정적이고 화가 나면,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 감정이 나를 움직이는 행동에 영향을 줄 필요가 없다.  화가 난다고 해서 물건을 마구 던지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저 그 감정을 이해하고 인지하고 있다면, 벌써 우리는 감정을 다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감정을 존중하고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이 감정을 다스리고 싶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 나는 로봇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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