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삶을 배우다
삶에서 조연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각자 개인의 삶에서는 본인이 주연일 테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비대한 자아 때문인지 내 삶에서 조연의 위치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묻히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었다. 대회에서도 수상권에 들지 않으면 나는 비참해졌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라면 쉽게 우울해졌다. 눈에 보이는 성취, 타인의 인정, 나를 향한 박수갈채, 이런 것들이 나의 사회적 자아를 구성했다. 나의 성취는 나만의 돋보기에 의해 더 커 보이는 건 간과했지만 말이다. 순간 누군가에 의해 주목되는, 이 상황에서 주연이 된 느낌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이 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정말 비호감인데, 약간의 겸손까지 떨어주면 한국사회에서 더욱 미덕이 되어 주연의 자리를 견고히 한다는 그런 지혜도 체득했다.
그래서 지금 주연이냐고? 아니 난 철저히 조연의 위치에 있다. 직무도 어시스턴트. 말 그대로 도와주는 사람. 주연의 업무를 도와준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스스로 일군 내면의 사회적 자아가 다치는 것을 자주 목도했다. 철저히 묻히고, 잊혔다. 가끔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했다.(실제로 무시하는 인간들도 보았다.) 쥐꼬리 같은 봉급,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고용 불안정성은 차치하고도 매 상황, 매 서사에서 나는 공기같이 맴도는 사람이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행동하는 사람. 그렇다고 나는 이 상황을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번 비참해지는 순간은 분명 있지만, 늘 주연의 위치만 생각하던 나란 인간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주었다 생각하면 너무 낭만주의적인 감상일까.
부끄럽지만 편협했던 나는 아티스트를 돕는 스타일리스트, 매니저들은 무슨 재미로 일을 하나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은 무척이나 존경합니다만) 어떤 주요 업무를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은 물론이고, 그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와 희열을 생각해보지 못한 듯하다. 자주 촬영현장에 투입되는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나의 시선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에게 가있다. 촬영장에서 주연의 최고 컨디션이 모두의 성과라는 듯 굴러가는 건 사실이지만, 내 눈의 끝은 늘 조연들의 분주함에 닿았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 쓰는 헤어실장님, 그리고 그 옆에서 여러 가지 꼬리빗을 들고 있는 헤어 어시스턴트. 의상을 잔뜩 픽업해서 옷매무새를 끊임없이 체크하는 스타일리스트 팀들. 보이지도 않는 사진의 밖에서 무거운 조명을 열심히도 들고 무거운 물건들만 들고 뛰어다니는 포토팀. 순간 주연은 조연들이 열심히 일군 예술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전엔 조연이라는 위치가 주연에 의해 눌리는 심상이 떠올랐다면, 이젠 조연들이 일군 세상은 실로 예술적이었다. 작은 움직임의 분주한 반복으로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조연 같았다.
이렇게 분주한데도, 주연보다 덜 쳐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지만, 조연들은 진짜 인생을 사는 사람들로 보였다. 나를 드러내는 것보다 그 행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보여주기 위해 살기보다 행위로써 사는 사람들이다. 이토록 큰 세상에서 '진짜' 주연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극도로 비관적 일지는 몰라도 다들 언젠가 태어나고 언젠가 소리소문도 없이 죽는다. 모두가 서로에겐 조연인 셈이다. 삶에서 내 삶이 주연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존감에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삶을 살아나가긴 위해서는 나는 어딘가 삶에서 분명 조연의 위치라며 나의 평범성을 인정하고 행위로써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