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서른 개 가까이 웹툰을 보던 때가 있었다. 아침을 먹으며, 또는 고등학교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꽤 오랜 시간을 웹툰을 보는 데 썼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책을 읽는 대신 쉽고 빠르게 이야기를 소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10대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등, 웹툰은 10대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가득했다.
'드라마' 장르의 인기 웹툰 중 상당수가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내가 ‘와라! 편의점’,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등 웹툰을 처음 즐기기 시작했던 2000년대 후반보다 2020년 현재 웹툰을 즐기는 독자층의 연령이 훨씬 낮아졌다. 구체적인 통계를 접한 적은 없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이 ‘10대를 대상으로 한 웹툰이 많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나 역시도 웹툰을 꾸준히 본 독자로서 10대들의 학교생활을 그리는 웹툰이 확연히 늘어난 것을 느꼈다.
10대가 웹툰에 열광하는 이유는 핍진성이라 생각한다. 청소년은 처음으로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기에 여러 경로로 다른 10대의 모습을 보려 한다. 자신의 모습을 등장인물과 비교하며 자기 객관화를 해볼 수도 있고, 친구와 겪었던 갈등을 다시 정리해보며 자신이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과 최대한 비슷한 옷과 비슷한 말투를 쓰는 10대가 등장하는 웹툰은 10대에게 자아를 탐구하는 최적의 매체다. 현재 웹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연애혁명> 역시 10대의 언어와 문화 등을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이 주된 인기 비결이었다.
분명히 줄거리나 그림의 디테일을 보면 현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빌리고 반영하려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등장인물의 유형은 어떨까?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는 에세이, 소설은 늘어나는 반면, 웹툰은 짧은 시간에 빨리 몰입할 수 있게끔 정형화되고 일부 특징이 극대화된 인물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검색한 결과, ‘교내 폭력 서클의 일원’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폭력 서클은 몰라도 일진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10대는 없으리라 본다. 폭력 서클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교실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일탈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는 그들의 특징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은 ‘잘 나간다’는 서술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모두가 동의할 만한 정확한 정의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이 서술어가 전달하는 의미는 모두가 알 것이다.
나는 일진이 참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진에게 쩔쩔매고 그들을 신경 쓰는 내가 싫었다. 뚱뚱하고 못생겼다 놀림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나의 어떤 행동이 일진에게 ‘나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항상 긴장상태에서 살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웹툰이었던 것 같다. 웹툰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압도적으로 일진이 많았고,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다는 이유로 일진의 목소리에 크게 휘둘렸다. 일진보다는 나와 비슷한 ‘못 나가는’ 인물과 나를 쉽게 동일시했기에,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에 의문을 갖거나 반박도 해보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웹툰 속에서 일진, 또는 일진이 호의를 보이는 인물은 대부분 외모가 뛰어났기에, 나의 외모를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심지어 나의 모든 가치는 외모로만 평가되고 결정된다는 가치관이 생길 뻔했다.
스토리 작법 상 주인공은 돋보이고,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학생들보다 서열이 높다거나, 자신의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는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착한 일진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신도, 더 성숙한 존재도 아닌 ‘더 센’ 또래 학생에 의한 구원을 바라는 서사는 지긋지긋하다.
물론 일진물만이 인기 웹툰이 되는 유일한 성공 공식이 아니다. 네이버 웹툰 <여중생 A>, <스피릿 핑거스>, <야채호빵의 봄방학>, <텃밭부 사건일지> 등, 학교생활을 다루지만, 그간 학원물이 보여주지 않았던 장르를 다루거나(<텃밭부 사건일지>는 코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가깝다.), 사춘기 청소년의 예민한 내면과 관계를 다루며(<여중생 A>, <스피릿 핑거스>, <야채호빵의 봄방학>)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불편함을 주지 않으며 재미도 주는, 학교 배경 웹툰의 모범사례라고 할 만하다.
내가 발견한 일진과 그저 활발한 친구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가’다. 현실에서나 웹툰에서나, 일진은 주변인들을 투명인간 취급했고, 자기중심적 사고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헤아릴 줄 아는 대다수 학생과는 다르다. 교복을 입고 생활하고, 좁은 지역에서 모이는 10대를 벗어나면 이들의 행실은 사회에서 곧바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종류의 것이다.
만화의 주인공으로 청소년을 자주 다루는 대중예술 장르로서, 웹툰은 그들이 미칠 영향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몇몇 웹툰은 그들이 그리는 일진처럼, 혹은 미성숙한 성인들처럼 비판에 무신경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처럼 성인이 되어서 상처 위에 성인으로서 정체성을 새로 만들어가야만 하는 피해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