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일하면 좋은 것들
매일 외국인들이 관광지로 방문하고, (최근에는 성수에 밀려 조금 시들하다고는 하지만) Z세대, 알파세대가 찾는 핫플레이스가 가득한 연남동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건 퍽 괜찮은 일이다. 아침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하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점심시간에는 그저 그런 급식이 아니라 줄 서서 먹는 맛집에서 메뉴를 고르는 즐거움도 있다. 퇴근할 때는 발레코어, 고프코어, 블록코어 등 무신사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스타일이 다 모인 젊은이들을 뚫고 경의중앙선을 타기 위해 달린다.
내게 직장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면, 가장 덜 어울리는 곳이 홍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홍대가 매우 낯설었다. 홍대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인싸동네' '핫플'의 이미지는 많이 죽었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성수동 열풍으로 인기가 시들했던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인 2017-2018년도에는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세련된 곳이었다. 그래서 첫 회사가 홍대로 사옥을 이전한다고 했을 때 겁부터 났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일만 할 건데도 나는 한껏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새내기 시절처럼.
그런 어색함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점점 홍대에 적응해가고 있다. 우선 아이돌 팬클럽 가입 후 생일 광고, 각종 기념일 광고를 찾아다니기 최적이다. 아쉽게도 주말에는 직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생일카페에 방문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오며 가며 생일 광고가 있으면 출퇴근길이 조금은 괜찮아진다.
또 홍대는 젊음의 거리라는 유구한 전통 덕분에 문화적으로도 즐길 거리가 많다. 1년에 영화를 100편 정도 보는 나에게는 영화관이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데, 홍대에는 독립영화관과 멀티플렉스가 골고루 있다. 그 중 홍대입구역과 상수역 사이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상상마당 시네마에 가장 자주 갔고, 연희동이라 길은 좀 멀지만 외딴 곳이라 분위기 있는 라이카 시네마에도 가봤다. 작년에는 개봉일에 <헤어질 결심>을 관람하기 위해 cgv 홍대를 찾기도 했다. 작년이나 올해나 각각 다른 직장에서 신입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영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연남동 좁은 골목길의 지리를 대충 안다. 경의중앙선의 퇴근길 시간표를 외운다. 근처에 세 개나 되는 올리브영의 지점별 이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