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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r 14. 2023

스즈메와 소피의 여정, 과거를 돌아보는 방법

 ‘스즈메의 문단속’과 ‘애프터썬’이 지나간 일을 현재로 소환하는 방법

토요일,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다.


신카이 마코토 신작은 오랜만이었고 얼마나 괜찮은 건지 몰랐지만, 작년부터 일찌감치 영화팬들은 기대 섞인 설레발이 요란스러웠다. 흐릿한 기억으로 남을 정도로 큰 감흥이 없었던 <날씨의 아이> 이후 무려 3년 반 만인 신작이 이번 영화다.


오늘은, <애프터썬>을 봤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친구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고 ‘에에올’에 열광하는 동안, 나는 새로 입사할 매거진 기자 자격으로 시계 신제품 론칭 행사에 다녀왔다. ‘이제 영화계를 떠나오긴 했구나’ 하는 쓸쓸한 마음이 올라오길래 냅다 ‘영화나 봐야겠다’ 하고 <애프터썬>을 봤다. 마침 시간이 딱 맞는 영화였다. 물론 보고 싶었던 거기도 하다. 2/1부터 장기상영 중인 데에다가 그 덕분인지 누적 관객수 4만 2,000명을 돌파한 영화라 안 볼 수는 없었다.


일요일에 정주행을 마친 <더 글로리>까지 합하면, 3일 내내 여자들의 고군분투와 (좋든 안 좋든) 추억들을 본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는 애초에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스즈메의 문단속>을 비롯한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는 현실, 그것도 실화에 기반한다. 그중에서도 재난으로 인한 슬픔이 신카이 감독의 주 관심사다. 그는 단편 때부터 파괴된 혹은 파괴되어 가는 세상을 서글프게 여긴다.


서글픔이 지나쳐, 초반 작품들은 개인의 과한 자기 연민, 피해의식에 기반한 판타지처럼 느껴졌었다. 반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확실히 결이 다르다. 개인에서 사회, 인류로 넓혀 훨씬 많은 이들에게 처음으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일단, 이번 작품은 1923년 관동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관통하는 재난을 직접 드러낸다. 이 천재지변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불러왔고, 이런 요소는 더욱 생생하게 관객을 극으로 끌어들인다. 현대 일본인들에게 굉장한 트라우마가 된 사건, 어린 시절 스즈메 역시 대지진으로 부모를 여읜 생존자로서 위로의 대상인 동시에 주체자가 된다.


이번 영화가 신카이 감독의 초기작 같았다면 지금과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아마 스즈메 개인의 아픔을 보편타당한 정서로 극대화 했을 것이고, 부모님에게 닿고 싶은 상실감과 닿을 수 없지만 판타지로 승화된 희망고문,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이모의 진심 어린 위로 정도로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 물론 그랬다해도 소소한 공감과 황홀한 비주얼, 래드윔프스와 함께 한 음악을 다채롭게 즐겼을 것 같다.


그런데 <스즈메의 문단속>은 확실히 다르다. 스즈메는 자기 상처를 극복하고 인류를 구한다. 폐허가 된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토지시(미미즈라는 지진 기운이 세어 나오는 뒷문을 닫는 자)를 자처한다. 스즈메가 미미즈를 막고 뒷문을 닫으면, 지진으로 이미 폐허가 된 그곳의 피해자들을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뒷문에 열쇠구멍이 생겨 잠글 수 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마음,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위로가 극대화 하며 전작과 결을 달리하는 순간이다.


의인이 된 스즈메의 여정은 생존자들, 현대 사회의 연대 또한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등학생 홀로 떠난 전국구 여행(미미즈가 새어 나오는 곳을 찾아 헤매는)에서 가는 곳마다 나타난 이웃들은 스즈메에게 도움의 손길, 목적 없는 선의와 온정을 아낌없이 베푼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스즈메는 세상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어린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서로 민폐를 끼치며 의지하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서로 기대며 살이 간다.


애프터썬

<애프터썬>은 소피가 20년 전 아빠와 떠난 튀르키예 여행을 그린다. 액자식 구조로, 튀르키예 여행을 담은 안의 이야기와 그때를 회상하는 현재 소피의 시점으로 나뉜다. 화면은 20년 전 찍은 캠코더 소스와 당시의 모습, 그리고 현재 시점까지 오고 간다. 이야기의 안팎을 유유히 전환하며 종종 튄다. 조명이 깜빡이는 클럽 장면이 끼어들면서 말이다.


영화는 기억, 추억, 회상, 애틋함... 이런 것들을 영상으로 시각화한 듯하다. 그렇다. 비선형적 구성은 단순히 아련한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재현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이다. 파편적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묜 내내 어리둥절할 수 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면 여운이 온몸을 휘감는 경험을 하게된다. 이런 여운은 관객인 우리가 소피와 같이 과거 회상을 체험한 결과다.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영화의 숏 구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추억을 함께 하게 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는 소중하고 드물다는 점에서 <애프터썬>은 훌륭한 영화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인의 트라우마를 인류애로 함께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면, <애프터썬>은 지극히 개인적인 ‘돌아본다 ‘는 의식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기억 속으로 파고들고 추억하는 본인을 자각하게 되는 구성이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어루만진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인류를 위로하고 <애프터썬>은 회상을 체험케 한다. 돌아봄으로써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방식이 둘 다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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