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서막
서너시간 걸렸을까. 밀라노 시간으로 밤 10시가 넘어 말펜사 공항에 내렸다. 입국 심사도 안 했는데 짐을 찾고 열리는 문을 나가니 바로 공항 출구가 나왔다. 헬싱키 공항에서 출국할 때 심사를 받긴 했는데, 그걸로 대체되는 건가? 당황하던 차에 입국장 자동문이 열리고 날 마중나온 친구 S가 보였다.
오잉? “어, 나 입국 심사 안 했는데 바로 나왔어.” 어리둥절해 하며 밀라노 땅을 밟았다.
친구는 종이에 환영한다는 인삿말을 써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황당해 하는 사이에 제대로 첫 인사를 나누지도 않고 “야 배고프다. 여기서 먹고 갈까?” 하고 밥부터 찾았다.
그런데 이게 우리 사이에 꽤나 큰 갈등의 싹이 됐다. 나중에 들었는데 친구는 그때 반갑게 인사하지 않은 나에게 많이 서운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나한테 S는 그런 친구였다.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은, 너무 익숙해서 반가운 기색을 표하는 것도 괜히 어색한 친구. 우리가 밀라노에서 만나 내가 한 달 동안 S의 집에 머물게 된 사실도, 이상하게 익숙하고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덕분에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다는 고마움과는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난 4년 간 제대로 만나지도, 틈틈이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우리 사이가 벌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 그래서 지나치게 무던했던 우리의 첫 인사가 나중에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지, 이때는 몰랐다. S는 내가 자기를 반가워 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였다. 미안했다. 그때의 나는 20시간 넘는 떠돌이 시간이 피곤했고 배가 고팠으며, 밥 때가 훨씬 지난 시간에 마중 나온 친구가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집에서 공항까지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는데... 고맙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것도 표현을 안 하면 모른다. 머리로 안다고 해서 몸(표정)으로 표현할 줄 안다는 뜻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깨달은 날이다. 약간의 후회가 남는 날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반갑게 인사 먼저 하고 악수든 포옹이든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