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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은 왜 개성이 없을까요

by 신민철

대학시절에 사 년간 동아리와 스터디 활동을 해왔다.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면서 글쓰기 동아리와 스터디까지 했다니. 남들이 보면 글쓰기에 꽤나 진심이었겠구나 싶겠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벌써 십 년 넘은 일이라서 잘 기억나 않은데, 동기가 끈질기게 권유했던 것 같다. 반쯤 타의로 가입한 셈인데, 선배들 눈치가 보여서 출석은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 사이에 내 얘기가 나왔고, 모선배의 권유로 스터디 모임에 합류하게 됐다. 그 사이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보통 둘로 나뉘었다. 잘 쓴다는 얘기에 데려왔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다거나, 재능은 있는데 불성실하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그때 나는 한 주에 A4용지 반 장 채우기도 무척 힘들어했다. 매주마다 소설 두 장쯤은 써가야 했는데, 사 년간 단 한 번도 분량을 채우지 못했다. 글쓰기에 진지한 사람들 사이에서 물 흐리는 인원이 나였다. 변명을 해보자면 선배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웠고 후배들에게 창피한 글을 쓸까 두려웠다. 이러니 글이 써질 리가 있나! 그렇지만 나는 내가 그 동아리와 스터디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나만큼 열정적으로 합평을 하는 이도 없었기에. 전체 인원들이 한 말을 모두 합쳐봐도 내 지분이 30%은 넘었다(이제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허풍 좀 늘어놓겠다). 선배들이 불성실한 멤버를 내쫓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난 평소에는 숫기가 없어도 합평 시간만 되면 수다쟁이였다. 개연성 맞지 않는 부분 딴지걸기, 이어질 내용 상상하기, 비문 찾아내기 등.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했던 건 그 사람의 개성 찾기였다. 우리는 합평 때면 인원수만큼 글을 프린트해서 나눠가졌는데, 나는 세 문장만 읽어도 누가 썼는지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 사람이 자주 쓰는 단어, 좋아하는 장르나 관심 있는 주제, 문장의 길이나 호흡, 문단에서 문단을 넘어가는 방식을 보면 누가 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고유한 습관이나 가치관이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게 이렇게도 신비롭다니. 마치 고대암호를 해독하듯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써 내려갔는지 탐구했다.

그중에서도 자기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이 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이 사람처럼은 못쓰겠다' 싶은 이들. 투박하지만 환하게 빛나서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당연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 사람들은 보통 거침없이 글을 쓰는 편이다. 한번 쓸 때 멈추지 않고 내달렸으니 문장에서도 그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뜨끈함이 당장이라도 글을 쓰라고 불을 지핀다(매번 분량을 못 채우고 모임에 참석했던 나는 끈함에 얼굴을 붉혔다). 이들의 글은 다소 거칠어도 그 단점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빛나는 가능성이 있기에.

그들의 글을 보면서 "제 글에는 왜 개성이 없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모범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말만 하는 탓에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다소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글쓰기 실력이 가파르게 늘었던 건 이 쪽이다. 앞선 예가 '사파'의 방식이라면 이들은 '정파'의 방식이다. 이들은 인물의 감정을 정확히 묘사하려 하고, 머릿속 상상을 눈에 보이듯이 구체화하려 한다. 바로 성냥에 불을 붙이기보다는, 불에 잘 탈 수 있는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기본기부터 단단하게 다져나가다가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성장한다.

더 무서운 건, 글쓰기 실력이 늘수록 개성도 뚜렷해진다는 거다. 묻혀있던 보물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아픔과 결핍에 맞서고,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더 강해진다. 모범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서 인만의 창조적인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결국 개성이란 깎아내서 다듬거나, 찾아내면 될 뿐이다. 그게 당신의 글쓰기를 좌절시킨다면, 그건 개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나아갈 용기가 없어서다. 멈추지 말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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