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글을 보여주기 창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창작물에 한해서 그렇다. 나도 그 마음을 잘 안다. 내 글을 남들 보라고 내놓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되는 사람과 일생일대의 각오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뿐. '나'의 창작물을 공개적인 공간에 내놓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발행을 누르기도 전에 자신에게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상상한다. 만약 누군가 이들에게 혹평이라도 한다면, 다시는 글쓰기에 손도 대지 않을지 모른다. 읽는 사람들의 반응에 설레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니까!
일기 쓰기로 만족할 거라면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용기를 내지 않아도 좋다. 혼자 읽고 혼자 만족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마음속에 창작욕과 인정욕이 꿈틀거린다. 보여주지 못해서 힘든 마음은, 역설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심리를 전제로 한다. 이들은 오히려 처음부터 완벽하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다. 문제는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넘어질 걱정부터 한다는 거다.
글쓰기는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는 작업이다. 못 써서 괴로운 시간을 겪어야 잘쓸 수 있고, 얼굴을 여러 번 붉혀야 낯짝이 두꺼워질 수 있다. 그 과정을 뛰어넘고 잘 쓰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도둑놈 심보다. 근섬유가 찢어지고 다시 붙으면서 단단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자아가 부서질수록 세상을 보는 시각이 확장된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읽기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고, 쓰기에도 적용되는 개념이다.
쓰고 싶다면 보여주기를 미루지 말자. 못 쓰더라도 끝까지 써야 다음에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습작생일수록 '보여주기'를 더 자주, 많이 해야 한다. 긴 글이라면 연재 형식으로 발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퇴고는 글이 완성되고 나서 해도 된다. 처음에는 내 글이 모자라다는 당연한 사실에 무뎌져야 한다. 후회와 반성과 쪽팔림은 그다음이다. 나도 내가 발행한 글들을 보면 그 조회수만큼 창피하고, 퇴고는 최대한 끝까지 미루고 싶다. 연재하던 글들은 매번 멈추고 싶고, 남몰래 삭제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 감정에 치열하게 맞서야만 나와 당신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당신의 글을 보여달라는 말이 당신에게는 무례로 비칠 수 있단 걸 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남기는 건, 쓰는 사람으로서 쓰는 당신을 애정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당신의 불씨를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