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 그의 아들은 4시간의 특별 귀휴를 거절했다. 법적인 제재나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라, 자식의 의지로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은 셈이었다.
여섯 남매 중 두 번째, 큰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께서는 급하게 장례식을 찾았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오히려 이런 식의 연락이 더 납득할 법했지만,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연락은 큰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의 A에게서 왔다는 걸 엿들었다. 큰어머니라고 지칭할 수는 없었다. 그 관계 자체도 모르고 있었으며,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식이 인정하지 않은 관계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장례비도 부담치 않겠다는 여자를 어떻게 큰어머니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장례식을 찾은 건 그다음 날이었다. 주말답게 충분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했으며, 저녁이 다 되어서 누나의 차를 타고 적십자 병원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너무도 평온했다. 아무런 마음의 울림도 없었고, 어떠한 불안도 감지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그저 일련의 절차로 느껴지다니. 낯선 감정에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큰아버지의 죽음이라서? 이제는 장례식도 슬슬 익숙해질 나이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누군가의 죽음에 초연할 수 있다는 게 정상적인 모습일까 내게 물었다.
후회도, 그리움도, 슬픔도 느낄 수 없는 장례식이 있구나. 그저 자리 하나를 잠시 채우는 걸로 그만인 조문도 있구나. 그의 쓸쓸한 죽음을 사촌이 알기나 할까. 구치소의 차디찬 바닥이 망자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의 책임도 물을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큰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큰아버지와 오래 살았다던 그 여자조차, 서로의 죽음에 뒤따라오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버지의 형제인 당신은, 혈연 외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우리를 이렇게도 복잡하게 하는지. 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조차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죽음에 이렇게도 마음을 쓰고 발 벗고 나서는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은 왜 이렇게도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지, 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