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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Oct 29. 2022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자식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소에 수감되어있는 그의 아들은 4시간의 특별 귀휴를 거절했다. 적인 제재나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라, 자식의 의지로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은 셈이었다.


여섯 남매 중 두 번째, 큰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께서는 급하게 장례식을 찾았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오히려 이런 식의 연락이 더 납득할 법했지만,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연락은 큰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의 A에게서 왔다는 걸 엿들었다. 어머니라고 지칭할 수는 없었다. 그 관계 자체 모르고 있었으며,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인정하지 않은 관계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장례비도 부담치 않겠다는 여자를 어떻게 큰어머니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장례식을 찾은 건 그다음 날이었다. 주말답게 충분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했으며, 저녁이 다 되어서 누나의 차를 타고 적십자 병원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너무 평온다. 아무런 마음의 울림도 없었고, 어떠한 불안도 감지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그저 일련의 절차로 느껴지다니. 낯선 감정에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굴도 기억나지 않는 큰아버지의 죽음이라서? 이제는 장례식도 슬슬 익숙해질 나이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누군가의 죽음에 초연할 수 있다는 게 정상적인 모습일까 내게 물었다.


후회도, 그리움도, 슬픔도 느낄 수 없는 장례식이 있구나. 그저 자리 하나를 잠시 채우는 걸로 그만인 조문도 있구나. 의 쓸쓸한 죽음을 사촌이 알기나 할까. 치소의 차디찬 바닥이 망자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의 책임도 물을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큰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큰아버지와 오래 살았다던 그 여자조차, 서로의 죽음에 뒤따라오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버지의 형제인 당신은, 혈연 외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우리를 이렇게도 복잡하게 하는지. 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조차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죽음에 이렇게도 마음을 쓰고 발 벗고 나서는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은 왜 이렇게도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지, 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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