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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NCR Sep 03. 2023

그 아저씨는 진짜 농구를 좋아했을까?

40대의 길거리 농구 ep.5

 농구장에 나가보면 대부분 10대 - 30대 젊은 또래들이 많이 있지만 ‘아재’들도 꽤나 자주 보인다. 늦은 나이에도 농구장을 찾는 ‘아재’들은 보통 농구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규칙적으로 나오는 편이다. 간혹 50대로 보이는 분들도 있다. 그중에 매주 나오시는 한분은 키가 나보다 작은데도 폭발력 있고 꽤나 터프하게 하시는 편이라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담배를 태운다는 점이다. 몇 대씩 담배를 피우면서도 게임 중에 터프한 체력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 타고난 것도 있을 것이다. 아마 젊을 때는 상당하셨으리라. 이런 분들을 보면 ‘아 나도 5-10년은 더 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긍정적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자주 나오셨던 또 다른 50대 분은 몸이 진짜 좋았다. 잘 태닝 된 구릿빛 피부에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옷도 보통 ‘나시’ 슬리브리스만 입고 나왔다. 잘 가꾼 30대 몸짱 느낌이랄까.  다만 농구 기술은 단순했고 아무래도 많은 나이에다 근육까지 있어서 그런지 체력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게임에 꼬박 참여하시는 성실한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정말 놀랍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 50대 아저씨와 다른 아저씨 사이에 멱살잡이가 벌어진 것이다. 아니 20대 대학생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요즘 대학생은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 농구장에서 멱살잡이라니. 곧 주먹다짐까지 할 기세였다. 큰 일 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싸움을 말렸다. 아니 왜 요즘애들은 싸움을 안 말리는 걸까. 이러다 괜히 옆에서 싸움 말리던 내가 맞아 쓰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지만 다행히 폭력 사태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싸움을 말려본 건 중학생 이후로 30년 만이지 싶었다. 아니 중학교 때는 싸움이 나도 안 말렸던 거 같기도 하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 50대 아저씨와 다툼이 난 사람은 농구장에 가끔 나오는 키도 180이 훌쩍 넘은 누가 봐도 농구를 오래 했나 보다 할 만큼 능숙한 플레이어였는데, 게임 중에 수비, 패스는 안 하고 그냥 슛만 쏜다고 그 50대 아저씨에게 한마디 한 것이다. 거기서부터 일이 터졌다. 50대 아저씨가 갑자기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 나이 돼서 농구 게임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네가 아냐? 이 xx야’ 까지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 나이 될 때까지 잘하는 게 농구밖에 없는 새끼가 뭐 잘 났다고 지랄이야’부터는 선을 넘었다.

  조금만 더 나가면 잘 알지도 모르는 상대방 학력, 집안, 재력까지 들춰내서 비난할 기세였다.

 그 50대 아저씨가 평소에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인상은 강해도 말투는 부드러웠었는데 갑자기 본인 안에 있는 스위치가 눌러졌나 보다. 본인 안에 있는 분노 조절 문제라는 것은 역시 50대가 넘어도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 아저씨의 그 건장하고 날렵한 몸을 볼 때, 아마 다른 운동도 꽤나 하셨을 것이다. 어딜 가도 '와 그 나이에 대단하시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운동을 하셨으리라. 20-30년은 족히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며 몸을 맞대고 운동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이기에 누구에게나 열여 있는 야외 농구 코트만 한데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농구라는 것은 경험과 기술이 없이 하기엔 분명히 어려운 스포츠인 것이다. 거기서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도 점점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본인이 평소 기대했던 리스펙트를 전혀 받지 못한 것을 넘어서 무시까지 당하니  엄청 자존심이 상하셨던 것 같다.


 그 싸움 이후에 그 아저씨를 다시 농구 코트에서 보지 못했다. 본인이 보였던 추태 때문에 사람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워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사건 이후에 안 그래도 잘 안 되는 농구가 지겨워져 버린 걸까. 아마 둘 다 아니었던 것 같다.

‘농구밖에 할 줄 모르는 새끼’ 

 그냥 욱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분은 원래 농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구를 진짜 순수하게 즐기고 하고 싶어서 농구코트에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 같으면 쪽팔림을 무릅쓰고라도 아마 다시 쭈뼛거리며 나왔을 것 같다. 농구가 다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농구부에 엄청난 폭력으로 유혈사태를 일으키고도 정대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 아저씨는 정말 농구가 하고 싶어 코트에 나온 게 아니라 멋진 몸으로 한세대 어린애들과 대등하게 운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스포츠도 그런 식으로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농구로 넘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 큰 어른임에도 보였던 상상이상의 막말과 폭력적인 행동. 

 하지만 난 그분이 보였던 부끄러운 말과 행동보다 그 사건 이후에 다시 농구코트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  50대의 나이가 되도록 본인 스스로 진짜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른다는 그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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