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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NCR Oct 29. 2023

확실한 '성공'

40대의 길거리 농구 ep.6

“너 농구 좋아하면 골프는 못 친다”

골프에 소질이 없다는 둥 너무 어렵다는 둥 처음 배우면서 한참 징징거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기러기 생활 하시던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60대를 앞둔 나이에도 여기저기 직장을 옮겨 다니시며 농구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장년부 대회를 출전하시던, 중앙대 출신의 농구 마니아셨다. 이전에 농구하다 발을 밟아 크게 삐었을 때 치료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고 계셨다. 동호회에 불러주셔서 같이 한 적도 있었다. 

“농구 재미 알면 골프 재미없어서 못 쳐”

 왠지 골프는 못해도 농구를 좋아한다는 게 약간은 더 멋지게 느껴지는 듯한 쿨한 발언이었다.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가끔은 앞뒤 재지 않고 저런 확실한 결론을 내는 문장이 멋있다. ‘어스윈드 앤 파이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말처럼.

하지만 불행히도 세상의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학 때 농구를 잘하던 친구들 대부분은 운동 신경이 좋아서 나중에 골프도 엄청 잘 쳤다. 난 그냥 골프를 못하는 것이었다. 역시 세상은 잔인한 것이다.


 아니면 그 친구들은 농구도 재미있고, 골프도 재미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확실했다. 농구가 재미있었다.

 어떤 식으로 생각해도 농구는 흥미가 생긴다. 누군가는 농구라는 게임 자체가 재미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부딪히며 땀 흘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슛이 들어갈 때의 그 느낌이 좋을 수도 있겠지. 나는 뭐랄까. 그냥 좋다. 농구공이 손가락에 닿을 때(그렇다. 농구공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에 닿는 것이다. 그래야 컨트롤이 된다.) 그 느낌부터 뭔가 설렌다. 살짝 오돌토돌한 그 감촉이 지문에 닿을 때 뭔가 살짝 흥분된다. 드리블을 쳐주길 바라는 농구공의 속삭임이 느껴진달까. 적고 보니 변태 같기도 하다. 뭔가 진짜 좋아한다는 것은 변태 같은 면이 동반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퉁, 퉁’ 농구공을 코트에 드리블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살짝 편해지면서 뭔가 다음 단계로 더 나가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바람을 가르고 코트를 질주해서 레이업을 올려놓고 싶다. 새로 익힌 크로스오버 드리블과 헤지테이션을 몇 번 시도해 본다. 몸이 좀 달아오르면 3점을 쏘고 싶어 진다. 슬슬 게임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로라는 느낌은 없다. 물론 '잘하고 싶다’는 욕구를 완전히 조절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자연스레 재미있다 좋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가끔 뭔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잘하고 싶은 욕구가 스스로를 삼킬 때가 있다. 나에겐 사실 음악, 작곡이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린 음악은 결국 뭔가 이루어내야 한다라는 강렬한 욕망을 만들어 내었다. 내가 얼마나 긴 시간을 노력을 했는지, 내가 얼마나 재능이 있고 잘하는지 남들에게 증명을 해 보이고 싶었다. 


 열심히 만들었던 데모곡들이 전달조차 되기 어렵고 번번이 거절당하던 어느 날 왼쪽 귀가 먹먹해졌다. 난청이 온 것이다. 병원을 가보았지만 정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없었다. 대부분 난치성 질환들이 그렇듯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음악으로 뭔가 보여줘야겠다, 이뤄내야 한다는 성공의 욕망이 어느 순간 음악을 즐기고 만드는 재미를 완전히 넘어서 나약해져 버린 40대의 육체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유명 뮤지션인 장기하도 본인 에세이의 첫 장에서 밝혔듯이 비슷한 병을 겪었다고 한다. 그의 원래 꿈은 드러머였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하루 수 시간씩 열심히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병원에서 '근이상긴장증'이라는 원인도 치료도 명확히 없는 병을 진단받는다. 손과 팔의 운동 감각이 필수인 드러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성공에 대한 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은 많은 연예인과 유튜버들의 사례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다행히 나에게 농구는 그렇지는 않았다. 원래 큰 기대가 없어서 그랬을까. 재능이 없다 생각해서 그랬을까.  경기가 끝나면 가끔 내 플레이가 한심스러워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다음날 농구장에 나와 드리블을 하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게임할 생각에 흥분된다. 잘하는 날이든 못하는 날이든 여전히 농구는 재미가 있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하는 농구에는 딱히 성공과 실패가 없다는 것. 아니 세상 모든 일은 알고 보면 성공과 실패로 명확히 나누어지는 것이 애초에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결국 본인의 욕심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어낸 자기 멋대로의 기준일 뿐이라 생각한다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농구를 한다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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