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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Jul 13. 2024

갑자기 코칭이 내 삶에 찾아왔다

“나, 학교 가기 싫어.”

”아니, 왜? “

”그냥. 더 자고 싶어. “

”어서 일어나. 어제까지 잘 갔는데 그럼 안되지. “

“싫어. 오늘 안 갈래.”

”어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

”아이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너무 피곤해. “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네가 선생님인데.”


어디선가 본 우스개 소리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인 줄 알았는데, 그 아이가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인 것이다. 맞다. 선생님이라도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날이 찾아왔다. 2년 전 일이다. 잘 나가는 기업의 임원 8년 차, 산하에 100개에 가까운 팀이 있는 조직의 조직장으로 누가 보아도 하던 대로만 하면 몇 년은 문제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때가 되면 승진도 하고, 나름 전문가로 인정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열정이 식어 갔다. 소위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임원이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하여간 재미가 없었다. 주어진 일은 했지만, 내가 더 찾아서 하는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열정이 식은 것이다.


나는 리튬이차전지라는 분야에서 일한 지 이제 30년이 넘었다. 전기차가 지금처럼 세상의 관심을 받기도 전이었지만, 전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학원에서 배터리 소재 공부를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내게 유리한 쪽으로만 기억을 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씩 만들어 왔다. 세상에 없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과장이지만, 우리나라에 없던 것을 만들어 왔다. 실험실을 꾸미고, 장비를 사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없는 재료는 직접 합성을 하면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우리나라 산업의 기둥이 되었다. 그렇게 성장하는 산업의 중심에 있었기에 나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조금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기술은 발전하고, 세상은 변해갔다. 돌아보면 안타까운 시간도 있었지만, 나에게 칭찬해 줄 순간들도 참 많았다. 그런데 회사에 가기 싫어진 것이다.


점점 회사에서 재미와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평소 고민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정말 싫어하는지, 무엇을 하면 가슴이 뛰고, 무슨 일이 생기면 기가 꺾이는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나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단편적으로 질문에 맞춰볼 수는 있었지만, 그 답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 내가 가끔 개인적으로 상담을 했던 분이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코칭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분야가 내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회사에 코칭 관련 교육을 받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했으나, 당시 담당자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바로 알겠습니다라는 답은 했으나, 그 이후에는 추가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실행에 옮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이 다시 1년이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다시 열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은 더 늘어나고, 나는 주어진 많은 일을 하나씩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년 전과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코칭이라는 단어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 인재육성담당이 새로 선임되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그분께 코칭 교육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1년 전과는 정말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 코칭 공부를 하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본인은 임원들이 코칭 교육을 받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임원들 중에 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다들 현업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뭔지도 잘 모르는 코칭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인재육성담당 덕분에 나는 20시간짜리 기초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사실 나도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코칭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분이 한번 관심을 가져보라고 해서 생긴 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코칭경영원에서 진행된 20시간의 SMART coaching 과정은 나를 대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코칭은 코치와 고객의 수평적 관계에서 시작된다. 이제까지 나는 내가 조금 더 잘 아는 것을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코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코칭은 멘토링일 뿐 코칭은 아니었다. 코칭은 코치보다 고객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코칭은 고객을 온전하고 (holistic), 해답을 가지고 있고 (resourceful), 창의적 (creative)이라고 생각하는 코칭 철학을 근간으로 한다. 고객을 부족한 사람도 아니고, 답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틀에 박힌 사람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답을 알려주어야 하는, 무언가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아직 스스로 꺼내지 못한 답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코칭이라고 했다. 그래서 코치와 고객은 수직적인 것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라고 했다.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선배와 후배, 리더와 팔로어라는 관점에서 조직을 그려왔었는데, 코치라는 새로운 관계가 들어온 것이다.


20시간의 짧은 기초 과정이었지만, 몇 가지는 내 기억에 새겨졌고, 행동을 조금이라도 바꾸게 만들었다. 가장 큰 것은 경청이다. 경청이라는 말은 워낙 많이 듣는 말이고, 회사에서는 그래도 스스로 잘 듣는 편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낯설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온전히 듣지 못하고, 나름 주요 내용만 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기 전에 중요성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마음을 닫기도 하고 반박을 준비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귀로는 듣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슴으로는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을 받고 나서 아내에게 나의 듣는 태도가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직원들과의 면담 시간에 직원들이 말하는 시간이 늘어가는 것을 느끼기면서 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문제를 풀어가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어야 한다고 했던 것을 반성하였다. 스스로 떠먹을 수 있고, 밥상도 차릴 수 있고, 요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며, 같이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면, 질문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았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내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해 낸 것이다. 직책이 올라가면서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좌절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내게서 열정과 재미를 빼앗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할 때 느꼈던 재미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해야 하는 자리가 되면서 잊었던 것이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문제를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가고 답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 재미가 있다는 것을 코칭이 다시 일깨워주었다. 내가 고민하던 그 재미를 회사 일에서 잃어버렸지만, 코칭 안에서 다시 찾은 것이다.


20시간 교육을 받고 50시간 이상의 코칭 시간을 쌓으면, 가장 기초 자격인 KAC(Korea Associate Coach)를 취득할 수 있다. 힘들게 코칭 시간을 쌓아 KAC를 받고 나니, 코칭 공부를 더 하고 제대로 된 코치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직접 가르쳐주고 따라오기만을 바라며, 잘 따라오면 기분이 좋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오는 실망감이 내게서 재미와 열정을 가져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늦은 때는 없다고 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코칭을 제대로 배워야만 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KPC(Korea Professional Coach) 자격에 도전하기로 했다. 잠시 달려오던 일상에서 벗어나 잊고 있던 어쩌면 아직 알지 못했던 나를 찾기 위해 코칭 공부를 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찾은 나와 함께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에 조금씩 더 재미를 느껴 간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길에 발을 디딘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코칭이 내 삶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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