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먹진인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가 May 21. 2023

트러플 오트 리조토

스페인에서 물 건너온 트러플 오일을 선물 받았다. 설연휴간 자리를 비운 솜이 사무실 지킴이에게 내리는 신혼여행 선물, 뚜껑을 열자마자 짙은 트러플향이 묵직하게 느껴지고, 그 속에서 질 좋은 올리브가 뿜어내는 향미가 중간중간 존재감을 내비쳤다. 트러플을 두르기만 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졌다. 스페인 요리하면 생각나는 토마토의 짙은 맛과 잘 어우러지는 무언가.


파스타는 너무 뻔했다. 그것보다는 살짝 변주를 넣어야 트러플오일의 첫 개시를 기억에 남도록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마토와 트러플의 맛이 주가 되면서 식감을 한껏 살려줄 베이스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찰나, 귀리밥을 해 먹겠다고 묵혀두었던 귀리 봉지가 보였다.


파스타보다는 무겁지 않으면서 쌀보다 끈적거리지 않는 귀리로 만드는 리소토. 리소토가 아니고 오트토라고 불러야 하려나. 냄비에 물을 받고 귀리를 익히기 시작했다. 귀리는 쌀보다 빨리 익어서 10분 남짓이면 충분히 익는 느낌이다. 끓는 물에 잘 씻은 귀리 세줌을 넣고 익어가기를 기다렸다.


귀리가 익는 동안 손을 토마토로 뻗었다. 잘 익은 토마토 두 개를 반갈라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르고 앞뒷면을 고르게 익혔다. 겉을 살짝 태울까 고민하던 찰나, 표면은 이미 알맞게 타고 있었다.


이번 요리의 세 중심을 완성하는 트러플, 토마토, 귀리. 그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세 가지의 맛과 향, 식감을 온전히 어우러지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이번 요리의 핵심이었다.


다 익은 귀리는 마늘을 볶은 오일에 볶아낸다. 귀리 삶은 물을 살짝 더해 농도를 조절하고, 집에서 해 먹는 알리오올리오 레시피처럼 굴소스를 아주 약간 넣었다. 냉장고에 있는 브로콜리와 버섯도 함께 넣어 볶아준 뒤 그릇에 담아 그 위에 잘 구운 토마토를 얹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어 보이지만 아직 한 스텝이 남았다. 적절한 양의 트러플오일을 오트리조토와 토마토 위에 두르는 것. 트러플 향이 모든 맛을 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는 않을 정도로 세심한 양조절이 필요한 순간이다. 오일을 잘 흔들고 스푼에 덜어 토마토에 조금, 귀리 부분에 조금 나누어 휘리릭 둘렀다.


잘 익은 토마토를 숟가락으로 살짝 으깨 귀리와 함께 한입 떠 입에 넣었다. 특유의 귀리향이 더해진 리소토는 쌀로 만든 것보다는 투박한 맛이지만, 씹을수록 톡톡 터지는 귀리 식감이 매력적이었다. 실험적으로 시작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요리를 발견한 기분. 다음에는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더해 채소의 식감을 살려 만들어보아야지. 남은 귀리봉지는 금방이라도 다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해장음식, 마녀수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