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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단번에 바꿀 수 있다는 착각

Family tree 앞에서 내려놓은 완벽한 해결사의 오만

by 다시 봄
이미지출처: https://online.visual-paradigm.com/


어떤 일이 눈 앞에 떨어지면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몸부터 던지는 사람이다. 이것이 타고난 기질인지 훈련된 습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앞에 놓인 것을 빨리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작은 일들을 빠르게 쳐내는 것에는 능하지만, 큰 일들을 처리할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큰 일을 할 때는, 작은 일 할 때와 다른 전략이 필요하고, 긴 호흡으로 버텨야 한다. 그런데 나는 빨리 시작하고, 초반에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 붓는 편이다. 그리고나서 까마득히 남은 막대한 일의 양에 압도되어 숨이 막히고 쉽게 지쳐 버린다. 일이야 마감 기한이 있으니 억지로 마일스톤을 세워가며 꾸역꾸역 해낸다지만, 덩어리가 큰 삶의 문제들 - ‘치유’와 ‘성장’같은 - 앞에서는 그 막막함이 자주 절망으로 이어지곤 했다.


상담에서 어떤 중요한 통찰을 얻거나 책에서 강한 울림을 느끼면, 그 즉시 인생이 달라지길 바랐다. 원인을 알았으니 바로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늘 내 조급함을 따라오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몰아붙였다. 빨리 성장하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시간에 가계도(Family tree)를 그릴 기회가 있었다. 나로부터 시작해 아이들, 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 세대까지 기억나는 모든 가족과 친지의 정보를 채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정보를 적으며 그 특성들 옆에 '나는 누구의 이런 모습이 싫어서, 정반대의 길을 선택해 살아왔다.' 라는 부연 설명도 적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 완전히 새로운 길을 판 사람이라 믿었다.


그런데 완성된 가계도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 순간, 나는 조용한 충격을 받았다. ‘새롭게 만들었다’고 믿었던 나의 모습조차, 이미 가계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특성들이었다. 내가 반발심으로 선택한 길도 결국은 가족이라는 큰 흐름 안에 있었다. 나의 기질, 성격, 습관, 행동 방식 그 어느 하나도 이 핏줄의 지도를 벗어난 것이 없었다. 나는 이 가계도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응축판이었다. 어떻게 수백, 수천 년 대를 이어 내려온 이 흐름을 나 혼자 단번에 끊어내고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건 마치 내 손으로 유전자를 오려내고 재조립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생각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신일 것이다.


내가 여태껏 변화가 더디다고 실망했던 건,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기대치의 설정값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상담 선생님도 화를 끊는 데 20년이 걸리셨다는데, 내 윗 세대의 수많은 이들도 저마다의 저주와 결핍을 끊어내려 몸부림쳤을 텐데. 만약 그것이 단숨에 가능한 일이라면, 인류의 수많은 사유와 예술이 그렇게 오래 삶의 고뇌를 기록해 왔을 리 없다.


이걸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하루 아침에 느긋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문제가 생기면 불나방처럼 뛰어들 것이고,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해 안달을 낼 테고, 열정이 다 타버린 후 바사삭 부서진 몸을 보며 허탈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려고 한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큰 흐름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을 단번에 갈아엎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닿을 수 없는 이상적인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일을 멈추려 한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려 한다. 장점은 살리고, 약한 부분은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루고, 아주 조금 더 나은 삶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주는 것. 수없이 들어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변화는 해결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마음으로 인정하는것. 그것이 유한한 내가 무한한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작지만 확실한 구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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