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
굴에서 나와보니
산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맞닿아 있는 하얀 산은
고요했다.
이 고요가 너무 예뻐서
다들 숨죽이고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폴짝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지나온 길이 푹푹 꺼졌다.
눈이 참
푹신하기도 했다.
조금 더 속력을 내어 뛰어 보았다.
눈에 푹푹 파묻히는 이 느낌이
너무 재미있었다.
코에 눈이 묻기도 하고
눈에 눈이 들어가기도 했다.
발도 시렵고
엉덩이도 차가웠지만
그 차가운 느낌마저
너무 재미있었다.
정신없이 뛰어놀다 보니
배가 고팠다.
근처에 있는 어린 나무 곁으로 다가가
껍질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나무껍질 뜯는 소리와
내가 그 껍질을 갉아먹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에
연주곡처럼 울려 퍼졌다.
신나게 껍질을 뜯어먹었다.
연주곡이 더욱 신나게 울려 퍼졌다.
투둑.
하늘에서 머리 위로 눈덩이가 떨어졌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눈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잠시
씹는 것을 멈췄다.
내가 행동을 멈추니
모든 소리가 멈췄다.
적막했다.
괴기스러운 적막함이었다.
순간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무언가 나를 쫓아올 것만 같았다.
나는 왔던 길로 재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엉덩이 바로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낚아챌 것만 같았다.
최선을 다해 속력을 내보아도
깊이 쌓인 눈 때문에 속력이 나지 않았다.
발이 너무 차가웠다.
엉덩이가 너무 시렸다.
깊은 눈에 시야가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 빠르게 가고 싶었다.
더 빠르게 달렸다.
한 보, 한 보
내가 뛸 수 있는
최대한으로 멀리 뛰었다.
귓가에 내 거친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왔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들릴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달음질도, 숨소리도.
드디어 저 멀리 굴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달렸다.
최선을 향해 달려가
굴 입구에 빨려 들어가듯이
쑥 하고
잽싸게 들어가 몸을 숨겼다.
호흡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심장이 두 배로 빨리 뛰고 있는 것 같았다.
헐떡거리는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마른침을 연신 삼켰다.
눈을 감고
심장 박동을 느꼈다.
심장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했다.
굴 바깥으로 아무 소리도 새어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심장 박동이 점점 잠잠해지면서
원래의 내 호흡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을 살며시 떴다.
굴 속은
캄캄했다.
그 어둠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났다.
외롭다.
사는 게
너무 외로웠다.
흐르는 눈물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나 감으나
어둠은 같았다.
내일 아침에는
이 외로움이 사라지길 바라며
그냥
어제처럼
잠에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