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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 Dec 19. 2023

눈 산, 눈 토끼







아침이 되어

굴에서 나와보니


산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맞닿아 있는 하얀 산은

고요했다.


이 고요가 너무 예뻐서

다들 숨죽이고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폴짝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지나온 길이 푹푹 꺼졌다.

눈이 참

푹신하기도 했다.


조금 더 속력을 내어 뛰어 보았다.

눈에 푹푹 파묻히는 이 느낌이

너무 재미있었다.


코에 눈이 묻기도 하고

눈에 눈이 들어가기도 했다.


발도 시렵고

엉덩이도 차가웠지만

그 차가운 느낌마저

너무 재미있었다.


정신없이 뛰어놀다 보니

배가 고팠다.


근처에 있는 어린 나무 곁으로 다가가

껍질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나무껍질 뜯는 소리와

내가 그 껍질을 갉아먹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에

연주곡처럼 울려 퍼졌다.


신나게 껍질을 뜯어먹었다.

연주곡이 더욱 신나게 울려 퍼졌다.


투둑.


하늘에서 머리 위로 눈덩이가 떨어졌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눈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잠시

씹는 것을 멈췄다.


내가 행동을 멈추니

모든 소리가 멈췄다.


적막했다.


괴기스러운 적막함이었다.


순간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무언가 나를 쫓아올 것만 같았다.


나는 왔던 길로 재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엉덩이 바로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낚아챌 것만 같았다.

최선을 다해 속력을 내보아도

깊이 쌓인 눈 때문에 속력이 나지 않았다.


발이 너무 차가웠다.

엉덩이가 너무 시렸다.

깊은 눈에 시야가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 빠르게 가고 싶었다.

더 빠르게 달렸다.


한 보, 한 보

내가 뛸 수 있는

최대한으로 멀리 뛰었다.


귓가에 내 거친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왔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들릴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달음질도, 숨소리도.


드디어 저 멀리 굴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달렸다.


최선을 향해 달려가

굴 입구에 빨려 들어가듯이

쑥 하고

잽싸게 들어가 몸을 숨겼다.


호흡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심장이 두 배로 빨리 뛰고 있는 것 같았다.


헐떡거리는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마른침을 연신 삼켰다.


눈을 감고

심장 박동을 느꼈다.

심장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했다.

굴 바깥으로 아무 소리도 새어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심장 박동이 점점 잠잠해지면서

원래의 내 호흡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을 살며시 떴다.


굴 속은

캄캄했다.


그 어둠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났다.


외롭다.


사는 게

너무 외로웠다.


흐르는 눈물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나 감으나

어둠은 같았다.


내일 아침에는

이 외로움이 사라지길 바라며

그냥


어제처럼


잠에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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