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넓게는 과거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남은 모든 물건을 말하고 좁게는 그 중에 의미있는 물건을 말한다. 역사의 정의에 물건이라는 조건을 더 붙인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하다. 그래서 그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며 시대상황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예전에는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아 시대가 오래되고 의미가 뚜렷한 것들 위주로 수집, 전시했다면 요즘은 경제적, 문화적 상황이 나아져 앞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물건이나 의미가 작은 물건도 미리 수집하고 있다. 왜냐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거나 당분간은 충분한 양이 있겠지 생각했던 물건이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거나 망가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글박물관에서 한글과컴퓨터사의 원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의 최초버전(실물)을 찾고 있다는 공고가 화제였다. 겨우 3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찾으려니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수집물품을 정해야 할까? 우선은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것들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아래아한글 1.0’ 역시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라고 한다. 이처럼 (한국)최초의 발명품이나 처음으로 수입, 전파된 물건 등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가치가 크다. 그 다음으로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물건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애플 아이팟까지 넘봤던 아이리버 MP3, 서울시민의 충실한 교통수단으로 정착한 공용자전거 ‘따릉이’, 꾸준히 잘 팔리는 별미 ‘불닭볶음면’, 남산타워의 ‘사랑의 자물쇠’ 울타리 등등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한국인의 특별성과 보편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다.
물건으로는 특정하지 못하지만 어떤 상황이나 체계를 보여주는 사진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한줄서기를 하는 모습이라던가, 불판 위의 고기를 가위로 자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비디오도 유물이 될 만하다. 그 다음으로는 유명한 인물이나 단체의 물건을 수집할만하다. 누가 봐도 의미가 큰 물건이면 당연히 좋지만 본인이나 내부인물만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는 물건이라면 그것이 주는 울림도 크다. 당시에는 이런 것까지 모으냐는 핀잔을 들었겠지만 그런 사람들 덕분에 사소하면서도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생활사적 유물이 남겨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로 전달된다면 학예사들의 고된 노동을 다소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물건들을 보다 보면 이것이 좋은 유물이 될지 아닐 지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내 선입견 때문에 이것이 가진 진가를 알아채지 못할까 괜스레 막막해지기도 한다. 박물관에는 미정리유물이 항상 많아서 ‘편견’을 가지고 신속하게 유물을 정리하는 것이 좋은 유물을 빨리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다른 이들이 모르는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전문가의 소임일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름 전문가랍시고 쉽사리 판정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그래서 평가하는 위치에 있을수록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점점 답답한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도 든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역사란 정말로 온전히 사람에 기대는 학문이면서 가치이다. 나쁜 일은 되풀이되지 않게, 앞으로는 지금보다 밝아지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이 과거가 되는 미래에 가서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물건들을 남기는 것이 학예사의 임무일 것이다.
*사진&설명 출처: 토우(미륵10055, 국립익산박물관)
: 몸체는 없고 머리부분만 남은 편으로, 표면이 흑회색을 띠며, 작은 흙덩어리를 다듬어서 두눈과 두개의 콧구멍, 입을 깊게 눌러 찍어서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아래로 처진 눈과 조금 벌린채 한쪽으로 약간 틀어진 입모양이 조금은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