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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혜 Nov 08. 2023

 Day 2 (1/2) 진리를 따라가는 길

종교개혁 신학자 얀후스의 발자취를 찾아서

새벽 3시부터 눈이 떠졌다. 시차 때문에 어쩔 수 없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출을 보러 가야겠다. 다른 친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준비하고 첫 트램을 타러 가보자. 새벽 공기는 차갑고 중앙역 앞은 고요했다. 트램도 고요하게 출발하는 듯 했으나 돌바닥을 지날 때는 덜컹덜컹, 바닥의 질감에 따라 달라지는 승차감이다.


카를교는 낮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해서 한산할 새벽에 왔는데 저 멀리 여명이 짙어지고 해가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색깔이 너무 오묘하고 아름다워서 벅차오르고 빨리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 해를 잡으러 신나게 뛰어갔다!

 


카를교는 다리 양쪽에 성인들을 조각한 석상이 늘어서 있고 프라하의 한강 격인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라서 참 운치가 있다. 해는 어느새 떠올라서 밝아지고 나는 새벽 감성에 젖어 있기엔 강바람이 춥고 뱃속에서 고로록 노래가 들려와 다음 번에 다시 제대로 일출을 보러 오기로.


호스텔 조식은 15,000원인데 요즘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올라서 이 정도 가격에 빵 따뜻한 차 요거트 뮤즐리 햄 치즈 소세지 계란 스크램블 포리지(서양식 죽) 스무디 팬케이크 디저트까지 양껏 먹을 수 있으니 괜찮은 듯. 따뜻한 국물이 그립지만 차 한잔으로 대신해야겠다. 여기는 차를 줄 때 항상 레몬과 꿀을 같이 준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점은 비건용 음식을 명확하게 표기하고, 스무디 조차 우유 넣은 것/ 안 넣은 것으로 선택권을 준다. 나처럼 우유 먹으면 배 아픈 유당불내증 까지 배려해주니까 참 고마운 식탁의 배려가 느껴진다.   

왼쪽은 우유 들어간 스무디, 오른쪽은 안 들어간
팬케이크 기계에서 미니호떡처럼 팬케이크가 뿅


아침 든든히 먹고 도착한 곳은 베들레헴 예배당. 사실 처음 여행 가기로 마음 먹고 여행지를 열심히 고르다가 단순 관광이더라도 어떤 테마가 있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멘토이신 오연택 목사님께서 “동유럽 체코에 가보면 어때? 거기 마틴 루터보다 100년 앞서서 종교 개혁을 한 얀 후스 라는 신학자가 살았던 곳이야. 둘러보면 의미 있지 않겠니.” 제안을 주셔서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알아보니 신기하게도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직항 프로모션 8% 할인 이벤트가 있는 것 아닌가. 아 여기 가는게 맞나보다 싶어서 내가 지금 프라하 땅을 밟고 있게 된 거다.


(여기서부터 기독교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쉽게 적었지만 혹시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이 있거든 댓글로 적어주시면 늦더라도 답변드리겠습니다. 여행중이라 정확한 정보가 아닌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봐주셔서 댓글로 고쳐주세요~)


얀 후스가 살았던 시대는 로마 가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때였다. 교황의 권위가 너무 높았고 너도 나도 교황이라 주장하며 급기야 각국에서 내세우는 교황이 3명이 되는 (아비뇽유수) 사건, 급기야 면죄부(죄 지은 사람은 회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면죄부를 구입해서 죄를 적으면 용서 된다는..) 발행과 판매까지 이르렀다. 성경이 어려운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일반 시민들은 내용을 읽지 못해서 성직자를 통해서만 그 내용을 전해들어야 했고 성찬식(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빵, 포도주를 나누며 이게 내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니 이것을 먹는 것처럼 내가 너희들과 하나되어 함께 하겠다고 하심을 기념해서 빵과 포도주를 먹는 행사)을 할 때 신자들은 포도주는 먹지 못하고 빵만 먹을 수 있었다. (신자들이 감격에 겨워 포도주 잔을 든 손을 떨어서 포도주가 땅에 떨어지므로 예수님의 피를 떨어뜨려 불경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래서 성직자만 포도주까지 성찬하게 했다고.) 한마디로 계층이 나눠져있던 것.

 

그는 신학자이자 프라하 대학의 학장까지 지내며 신학을 가르친 교수님이었는데 위클리프의 사상을 알게 되면서 지금 이 부정하고 타락한 행위들을 그치고 오직 성경에 기초하여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누구나 성경을 쉽게 읽도록 체코어로 성경을 집필하고, 신자도 포도주와 빵을 먹는 이종성찬을 하자고 주장하다가 결국 이단으로 몰려 독일 콘스탄스에서 화형을 당했다. 자신을 배척하는 이들을 위해 주님의 자비로 이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역사 공부 너무 길었죠 ^^; 다시 여행으로)


베들레헴 예배당 외부

작은 문으로 들어가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니 양복 정장을 단정히 입으신 남자 분이 맞이해주시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으신다. 한국이라고 하니, 아~ 한국 어디? 하셔서 부산 이라고 부산 아시냐고 하니 모르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겠다고 웃으셨다. 그러면서 각국의 언어로 적힌 안내지들 중에 한국어 버전을 건내주신다. 너만의 시간을 얼마든지 충분히 가지라고 하시고는 자리를 비켜주셨다.  


시내 중심가 한복판에 위치해 있지만 예배당 안은 바깥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기분 좋은 적막이 감돈다. 두루 돌면서 벽에 그려진 그림을 감상한 후에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제사 제물을 판매하는 장사치들을 꾸짖으시는 내용을 그린 벽화 (구약시대 제물은 자기 죄를 대신해서 태워질 것이기에 스스로 마음 다해 준비해야했어요)

사방 벽에 그려진 그림의 톤이 갈색이어서 그런지 층고가 아주 높지만 썰렁한 느낌이 아니라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얀후스의 뜻을 따라 후스파 가 생겼고 로마가톨릭과 대립해 전쟁이 일어납니다
당시 로마가톨릭의 부패 행위를 반대한 얀후스의 주장을 담은 반박문들


이 공간에서 드려졌던 예배, 얀 후스가 온 마음을 다해 전했던 하나님의 진짜 사랑, 모든 사람이 주 안에서 평등하다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진리가 담긴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했던 체코어 성경 집필의 행보를 가만히 되짚어 보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당신의 복음과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인내력을 갖고 즐거이 이 두렵고 수치스럽고 잔학한 죽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화형 결정을 듣고 나서 얀후스의 답 -


“하나님은 나의 증인이 되신다. 나에 대해 위증한 거짓 증인들이 말한 모든 죄목들을 나는 전파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 나의 설교들, 저서들에 나타난 나의 원리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복음에 대해 거룩한 박사들이 가르치고 해설한 그대로 나는 썼고, 가르쳤으며, 전파했다. 나는 오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혐의를 인정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제안에 대한 얀후스의 답-


화형식의 불이 옮겨붙는 순간까지 찬송가를 부르던 그의 마지막 기도가 어떠했을까. 나는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랑을 붙들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기도했다. 하나님을 따르는 내 모습이 평생 동안 이어지게 해 달라고. 어떤 어려움과 억울함과 위협이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리를 붙잡게 해달라고.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냐면, 그것이 나를 진정한 나로서 살게 하기 때문이다. 내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시기까지 한 예수님의 사랑을 인정하기에, 어떤 괴로움 속에서도 무한하게 채워주시는 사랑을 다시 찾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었다. 동상 아래 체코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서로 사랑하고 모두에게 진실을 염원하라.”


동상 옆의 틴 성당
성찬식의 포도주잔을 상징하는 성배

광장에 내리쬐는 햇살의 감촉을 느끼면서

한참을 가만 가만 거닐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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