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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May 06. 2023

남친이 빚을 갚아줬다

동거의 비용 

<비혼주의 동거커플, 동거집>


동거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으레껏 돈과 관련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지금 집은 누구 명의일까?

‘생활비는 누가 더 많이 쓸까?’ 등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목을 간질거리게 한다.


결혼한 사이라면 응당 공동의 것이라 여길 재산이 법적으로 묶여있지 않은 동거 커플의 경우 니 것은 너의 것이고 내 것은 나의 것일테니 

지출에 있어 손익을 따져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남녀의 데이트에서 누가 밥을 사고 누가 커피를 사는지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 아, 혹은 각자 먹은 것은 각자의 카드로 결제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데이트 비용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그런 게 있기나 하는 걸까? 


보통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1:1을 각출하는 것을 이상적이라 여길 것이다. 남자가 밥을 사고 여자가 커피를 사는 것만으로도 남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소지는 충분하다. 데이트 통장이 그럴싸한 대안으로 나왔지만 통장 개설의 의도와 달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누군가의 비상금이 되기 일쑤다. 연봉을 기준으로 환산하는 것도 꽤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나와 가또가 살고 있는 해방촌의 월셋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5만 원으로 가또가 오기 6년 전부터 내가 혼자 살고 있던 집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50만 원이었던 월세가 올해부터 10% 올랐다. 가또와 동거를 시작하며 월세를 반으로 나누어 냈다. 모든 공과금은 내 통장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월세에 더불어 5만 원을 가또는 내게 주었다. 공과금은 여름이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고 겨울이면 가스비가 많이 나왔다. 5만 원이 부족할 때도 더러 넘칠 때도 있었지만 1원 단위까지 계산해서 나누는 건 셈에 약한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가또가 나서서 고지서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이번 달은 가스비가 많이 나왔네?’라고 말하면 묻지도 않고 공과금 비용을 5만 원 정도 더 보내줬다. 우리는 둘 다 셈에 밝지 않다. 


둘 다 지방 출신이라서 그럴까?라고 한다면 지방 차별 발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문과와 이과와 예체능까지 고루 섞인 우리가 둘 다 셈에 약하다는 건 설명할 방도가 없다. 딱히 부유한 집에서 돈을 펑펑 쓰면서 자란 것도 아니고 대단히 베푸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서울 사람들의 철저한 더치페이를 보며 놀라워했다는 경험담을 공유했을 뿐이다. 


내가 퇴사한 후로는 집안의 경제 사정을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월급과 보너스까지 알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굳이 서로의 소득을 알 필요가 없었다. 대한민국 30대 남녀의 평균 연봉을 통해 유추해 보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각자 돈을 쓰고자 하는 분야가 N극과 S극만큼이나 달랐다.   


미식을 탐구하는 가또의 엥겔 지수는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요리를 담당하기에 자연히 식자재 쇼핑을 도맡아 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에서 가성비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 집안에 0오미가 넘쳐나면서도 유일하게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비싸도 맛있는’ 것을 추구한다. 모든 것에서 비싸도 좋은 것을 추구(만)하면서도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가성비를 내세우는 내게 가또의 이런 부분은 내 것이 아니면서도 ‘돈 아까워. 굳이 이렇게 비싼 사과를 먹을 필요가 있어?’라고 따져 묻게 만든다. 그럴 때면 가또는 이렇게 답한다. ‘4천 원짜리 사과는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했어’ 그리고 그날 우리는 사과의 가격과 맛은 비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소비 성향은 여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후진 숙소에서 자더라도 무조건 밥은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그 철에 먹을 수 있는 아주 맛있는 것을 먹어 봐야 하는 가또의 욕망은 그의 바람처럼 쉽게 채워지진 않는다. 우리의 첫 여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킹크랩을 먹어야 한다는 경험자들의 말에 도착하자마자 씨푸드 레스토랑부터 갔다. 그러나 제철이 아니어서인지 블로그 후기에 속은 건지 킹크랩의 크기는 터무니없이 작았고 살수율은 더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때부터 가또의 킹크랩 기행이 시작되었다. 


2박 3일 동안 5번의 킹크랩 시식회를 가졌다. 아, 한 번은 털게였다. 4번 째까지 킹크랩을 먹어봤는데도 만족스럽지 않던 가또는 킹크랩이 문제인 것 같다며 털 게를 주문했다. 아무리 러시아에서 먹는 킹크랩이 한국보다 저렴하다고 한들 킹크랩으로 5끼니를 먹으면 여행 경비의 절반 정도를 식비가 차지하게 된다. 러시아 여행에서 먹은 킹크랩은 모두 가또가 값을 치렀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돈을 썼느냐고? 숙소에 썼다. 


여행할 때면 18세기 영국 상류층에 빙의해 ‘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외치는 내게 한 나라의 문화란 집이라는 공간에 응축되어 있다고 여겼고 고로 자연스럽게 숙소를 까다롭게 고르게 됐다. 고급 호텔에서 숙박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에어비앤비에서 고르고 고른 취향이 좋은 현지인이 살법한 그런 집(물론 대체로 사진발인 경우가 많다.) 이런 확실한 욕망의 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 00 보러 가자'거나 '00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가자'거나 먼저 제안한 사람이 돈을 내게 된다. 이런 제안은 ‘내가 하고 싶은 00에 동행해 주겠니?’와 같은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돈 문제에 있어서 이렇게 깔끔하기만 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실 나와 가또는 채무 관계다. 서른 살에 꿈을 이루겠다며 들어간 잡지사에서 3년 이상을 최저임금이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던 나는 일을 할수록 빚이 쌓이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월급 100만 원으로는 월세 50만 원을 내고 공과금과 통신비, 교통비를 해결하면 남는 돈으로는 삼시세끼를 먹기도 팍팍했다. 그러던 중 미뤄두던 건강보험료가 130만 원에 달하게 됐고 이를 한 번에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렇게 손을 대게 된 현금서비스는 곧 마이너스 통장이 됐고 마지막엔 카드를 돌려 막지 않으면 삶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땐 이 모든 게 정규직이 된다면 해결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나? 카드 한도는 꽉 찼고 마이너스 통장의 숫자도 마이너스 표기 뒤 더 이상 변할 수 있는 구석이 없었고, 그 모든 숫자는 한꺼번에 나를 독촉했다. 인생이 낭떠러지로 곤두박칠 치기 직전이었다. 그때 우리는 사귄 지 채 되지 않았다. 동거인에게 그럴싸한 전문직으로 보였을 내 재정 상황이 빚에 허덕인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들킨다면 우리 관계도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가또에게는 어렴풋하게 마이너스 통장을 막아야 해서 대출을 받았다고만 이야기했다. 


1년 정도가 지나고 우리의 관계는 좀 더 굳건해졌고 일상의 대화 중 내가 매달 내고 있는 이자가 원금의 20%가 넘는다는 걸 가또가 알게 됐다. 그 이자로 인해 나는 전직을 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게 됐음에도 밑 빠진 독에 물을 쏟아붓듣 돈을 대부업체에 갖다 바치느라 여전히 팍팍하게 살고 있었다. 내 팍팍함이 이해가 되지 않던 가또는 이유를 알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정적인 가또의 직업과 달리 다이나믹한 내 직장은 야근이 잦은 만큼 월급이 높았다. 우리는 비슷하게 벌었고 가끔은 내가 많이 번 달도 있었다. 그럼에도 항상 빈곤했던 내 이유를 알게 된 가또는 내 빚을 전부 갚아버렸다. 준 건 아니다. 나는 가또에게 무이자 대출을 받은 것이다. 매달 대부업체에 갖다 바친 돈만큼을 가또에게 주었다. 숫자는 빠르게 줄었다. 


그 일을 겪은 후에도 우리 사이는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다. 가또는 우리가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믿었다. 그저 매달 지출했던 돈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소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요즘에는 ‘사지 마’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는데 그건 부채감이라기보다는 돈을 모아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살게 될 우리의 집을 얻는 것. 뭐 너무 막연하고 어쩌면 이뤄지지 않을 소원 같은 것이기도 해서 생각처럼 소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비슷하게 산다. 프리랜서가 된 후 불안정한 수익에 어떤 때는 돈이 없고 어떤 때는 많이 벌기도 한다. 많이 못 번 달에는 가또가 좀 더 쓰고 많이 번 달에는 내가 돈을 더 쓴다. 규칙이나 부채감 따위는 없다. 우리는 그저 함께 사는 것뿐이다. 함께 하기 위해 돈을 벌고 함께 하기 위해 돈을 쓴다. 뭐 어쩌면 그저 둘 다 셈에 어두울 뿐일 수도 있다. 




음식에 돈 쓰는 남자와 숙소에 돈 쓰는 여자의 광기어린 과소비 대잔치 여행이 궁금하시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E7rpWRdO37Q&t=32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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