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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Aug 22. 2023

동거와 독거 사이

일주일 롱디 커플로 사는 기쁨과 슬픔


<비혼주의 동거커플 #16>


나와 동거인(이하 ‘가또)이 함께 산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4년이면 돌잡이 아이가 뛰어다닐 만큼 크고, 대학 신입생이 졸업생이 되고, 30대가 40대가 될 수도 있고, 청년묘가 노령묘가 될 수도 있는 시간이며,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고 정권도 한 번쯤은 교체됐을 법한 시간이다.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연애 경험을 가진 내가, 1년 이상의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내가, 형제자매도 번거롭다며 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는 내가 한 사람과 4년 이상 가족보다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우리의 독특한 생활양식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매주 목요일부터 그다음 주 수요일까지, 일주일을 함께 살고 다음 일주일은 떨어져 지낸다. 그다음 주는 또 이 패턴의 반복. 격주로 함께 사는 동거와 독거 사이에 있는 커플인 것이다.


이렇게 살게 된 건 가또의 직장 때문이다. 가또는 깊은 산골 안에 있는 천문대에서 천체 관측하는 일(엄밀히 말하자면 망원경을 관리하는 일과 천체를 기록하는 일)을 하며 그곳에서 제공하는(엄밀히 말하자면 월급에서 일부 비용을 제하는) 숙소와 식사로 숙식을 해결한다. 깊은 산골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날마다 출퇴근이 어려워 일주일 단위로 출근을 하는데 별이 떠 있는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해 보자면 한 달에 이주일 동안만 출근을 해도 나라가 정한 최소 노동 시간은 충족한다(고 한다).


함께 사는 일주일과 따로 사는 일주일 중 연애 초반에는 따로 사는 일주일의 존재감이 훨씬 컸다. 왕성한 세로토닌 호르몬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더 보고 싶은 애틋한 감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또가 돌아오는 목요일, 퇴근 후 잰걸음으로 집에 도착해 다급하게 도어록의 버튼을 누르고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그곳이 바로 이산가족 상봉의 장이요, 제대한 애인을 맞이하는 기차역 플랫폼?이었다.


‘자기야~’하며 집으로 들어가면 ‘어 왔어?’하며 이미 산골에서 퇴근해 낮잠을 자고 있던 가또가 되려 나를 반겨줬다. 그때는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곱 밤만 자고 올게’하며 집을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매일 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가또의 퇴근만을 기다렸다. 가또가 매일 밤 집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오래 사귄 연인이 되어갈수록 함께 사는 함께 사는 일주일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 연애 초반엔 단점이라 생각했던 이런 생활양식에는 이점이 더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점은 싸움을 막는다는 것이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싸울 땐 어떻게 풀어요?’라는 대답에 ‘저희는 싸우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는 커플인데, 이게 가능한 건 무던한 가또의 성격도 있겠지만 떨어져 있는 일주일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싸움도 두 사람이 같은 기조여야 가능한 것인데 내가 싸우자고 덤벼도 가또는  전혀 싸울 기세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우리의 싸움이란 나 혼자만의 싸움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싸움인지라 감정의 골이 풀려야 하는데 떨어져 있는 일주일 동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다.


내가 화가 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지금 가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이게 그렇게 화를 낼 만한 사안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일주일이란 시간은 이걸 하고야 말게 한다. 일주일은 생각을 하고, 이에 대한 감정 정리를 한 후 가또에게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우리가 그 문제를 다뤄야 할지에 대한 해결 방안까지 정리하여 브리핑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인 거다.


사실 이 과정은 가또가 출근한 후 3~4일이 지난 월요일 정도면 전부 끝나는데 그렇게 정리가 끝나면 화요일부터는 다시 가또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침대가 너무 큰 것 같고 혼자 먹는 밥이 맛없어지면서 다시금 그의 퇴근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다시 가또가 퇴근하는 목요일이 되면 지난주의 싸움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다급하게 번호키의 버튼을 누른 후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야~’를 외치게 된다.


두 번째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우리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그건 가족과 살아도 마찬가지다.


호주 어학연수 시절 사촌 언니와 방을 함께 썼는데 가까운 친척으로 서로 집을 왕래하기도 했기에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촌 언니가 함께 방에 있을 때면 언니의 모든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책상에 앉아 벽을 향해 있어도 마치 뒤통수와 등에 눈과 귀가 붙은 것처럼 언니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전까지는 어릴 때부터 방을 함께 쓰던 친언니 외에 한 번도 타인과 방을 공유해 본 적이 없기에 스스로의 성향을 파악할 기회가 없었다. 사촌 언니와 4달 정도 룸 셰어를 한 후로는 식비와 교통비를 줄이더라도 방만은 꼭 독방을 썼다.


나는 타인에게 크게 영향받는 성향으로 상대가 나를 신경 쓰든 말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매우 커 혼자만의 공간에서 다시금 에너지를 그러모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부분이 가또와의 동거를 결정할 때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존재라고 한들 타인과 집, 그것도 내 작은 월세방을 공유한다는 건 큰 도전이었다.


‘내가 숨기고 싶은 모습까지 보여주게 될까?’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싫어지면 어떡하지?’

‘함께 오래 있으면 질리는 거 아니야?’


‘한 집에서 산다’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아하니까 함께 있고 싶어, 함께 있으면 좋아’의 한 꺼풀 뒤엔 ‘좋으나 싫으나 함께 있어야만 해, 그래도 좋아?’가 숨어있다.


사실 동거를 결심한 건 연애 초반 마치 무한대로 커질 것만 같던 애정에 기댄 면이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은 콩깍지로 덮어놓은 채 그저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는 세로토닌의 지휘봉에 이끌려 동거를 결심했다. 경솔하다 싶을 정도로 성급하게 결정했던 동거 생활이 4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동거와 독거를 오가는 우리의 생활 패턴이 큰 몫을 했다. 동거를 결심했을 때도 ‘그래도 일주일은 떨어져 지내니까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일주일씩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한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가또에게 물었다. 이내 고민하는 얼굴이 된 그에게 ‘없지?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라고 답을 알려주었다. 동거 5년 차인데도 이렇게 오글거리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동력은 바로 일주일 단위로 겪게 되는 이별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떨어져 지내는 일주일의 끝이 그리움에 점철되어 있다면 함께 사는 일주일의 끝은 ‘지금쯤 갈 때 되지 않았나? 이제 좀 혼자 있고 싶은데?’와 같은 감정으로 휩싸여 있다. 일주일의 이별 없이 줄곧 함께 살았다면 우리의 현재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주일 단위로 사는 것에 대한 단점도 크다.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것. 애초에 비혼주의를 외쳤넌 내게 있어 대부분의 일은 가또가 없어도 크게 지장을 주지 않지만 내가 아플 때나, 반려묘가 아플 때는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 '먼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는 가또의 근무 기간이라 혼자서 병원에 가고 장례까지 치렀는데 그때 처음 우리의 물리적 거리가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실감했다. 결혼을 한다고 가정하면 내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까지.   


가끔은 우리가 온전히 함께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자주 싸우지 않을까? 질리지 않을까? 헤어지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그러나 가또가 지난 20년간 몸 담았던 분야를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분야_그가 관심 있어하는 AI, 코인, 웹소설 등_에 도전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다른 패턴으로 살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은 우리의 동거 반 독거 반인 라이프를 즐기며 가또가 일선에서 내려와 우리가 매 순간 함께 살 25년 뒤를 긍정 회로만을 돌려 상상해 볼 뿐이다. 음.. 연구 분야에 종사하는 가또의 회사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비혼주의 동거커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젤라가또' 유튜브 채널로

https://youtu.be/eLldgKIaj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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