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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Dec 21. 2023

군고구마와 여왕벌 방지 위원회


 대설

스물 한 번째 절기, 쿤 눈이 내린다고 하여 대설이라고 한다. 

 

수능이 끝나면 고3 중 누군가는 군고구마를 팔았다. 작은 시골이었던 내 고향에서는 일종의 풍습과도 같았다.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것 같은 군고구마 기계에는 옆면에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뚜껑이 여럿 달려있다. 손잡이 중 하나를 잡아당기면 잘 익은 군고구마 3,4개가 일렬로 누워있었다. 사실 그때 먹은 군고구마는 별로 맛이 없었다. 고구마 케이크 위에 올려진 고구마 페이스트에 비하면 단맛이 부족하고 텁텁했다. 


고3 겨울방학, 서울로 올라왔을 때 처음으로 편의점에 갔다. 편의점 문을 여니 달달한 냄새가 진동했다. 분명 군고구마 냄새인데 실내에서 날리가 없던 냄새에 의아함을 느끼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플라스틱 뚜껑이 닫힌 사각형의 금속성 기계 안 자갈 위에서 군고구마가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본 기계엿다. 내가 알던 군고구마는 아니었지만 그 냄새만은 기가 막혔다. 한참을 냄새만 맡으며 편의점을 둘러보다 결국 군고구마를 사봤다. 그리고 먹어봤다. 맛 또한 내가 알던 군고구마의 맛이 아니었다. 서울 군고구마는 이렇게 달고 눅진하면서 냄새가 진한가? 게다가 군고구마는 ‘좋은’ 음식이었다. GI수치가 낮은 음식. 감자는 먹으면 안 되지만 군고구마는 먹을 수 있었다. 칼로리가 높으니까 끼니를 대신해 하루에 하나만. 군고구마의 노란 속살을 먹었는데도 부족한 느낌이 들 때는 껍질을 씹어 먹었다. 영양분만 생각하면 대체로 식물의 껍질은 먹어도 딱히 문제가 없었다. 가끔은 흙이 씹히는 것도 같았다. 뱉을 수는 없었다. 배가 고팠으니까. 딱 그렇게 편의점 문을 열면 군고구마 냄새가 진동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 동호회에 가입했다. 바로 스노보드 시즌방 때문이었다.


시즌방은 계절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겨울 시즌 동안만 방을 구해 셰어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숙박 형태다. 보통 수상 스포츠인 웨이크보드나 수상 스키, 설상 스포츠인 스노보드나 스키처럼 지역 기반의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이 시즌방을 이용한다. 내게 스노보드를 알려줬던 옆자리의 회사 동료도 스키장 인근에서 시즌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많은 시즌방이 개인적 친분으로 이뤄지고 금전 관계로 엮이는 만큼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나 같은 초짜를 무턱대고 받아주는 시즌방은 없었다. 다행인 건 그 틈새에서 나 같은 초짜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즌방도 있었다는 거다. 바로 동호회. 


동호회에서 운영하는 시즌방은 큰 규모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바뀌는 분위기 때문에 뉴페이스의 등장은 이들에게 큰 오락거리가 됐다. 거기다 초짜라니. 작은 시즌방의 경우 ‘손이 많이 가는’ 초짜의 존재는 번거롭기 마련이지만 큰 시즌방의 경우 ‘손이 많은 만큼’ 초짜의 등장은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힘을 합쳐 저 초짜를 진짜 보더로 만들어야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보드판’은 고였고, 고인만큼 냉혹했다.


대화를 못 알아먹는 경우도 많았는데, 워낙 이들끼리 쓰는 은어가 많아서다. 넘어지는 건 ‘쩍’이라 불렀다. 앞으로 넘어지면 ‘앞쩍’, 뒤로 넘어지면 ‘뒷쩍’, 옆으로 넘어질 땐? 당연히 ‘옆쩍’. 설질을 이르는 표현도 다양했다. 따뜻한 낮 기온에 녹은 눈은 ‘슬러시’, 밤새 슬러시가 얼어붙은 후 잘게 부서지면 ‘설탕’. 눈에 대한 건 특히 음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설차가 지나간 후 생긴 줄무늬는 ‘피클’이다. 슬로프가 여는 시간에 맞춰 보드를 타러 가는 걸 ‘땡’을 타러 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피클이 있는 슬로프에서 라이딩을 할 때는 ‘피클을 썰었다’고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면 녹았다가 얼어붙은 큰 얼음 알갱이가 슬로프에 굴러다니는데 이 얼음 알갱이를 ‘감자’라고 부른다. 이런 날 보드를 타면 ‘감자를 주웠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이런 표현을 밥먹듯이 사용하지만 처음 보드를 타던 해에는 좀체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이런 표현은 알아먹기도 어려웠고, 내가 쓰는 것도 어색했다. 그렇지만 말을 못 알아먹는 건 그나마 나았다. 


내 데크를 내가 들고 가는데도 ‘자기 장비는 자기가 들어야 한다’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고, 아직 장비의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한 내가 데크 세팅에 대해 물을 때면 ‘자기 장비는 자기가 세팅해야 한다’는 타박을 들었다. 이 모든 문장 앞에는 ‘남자든 여자든’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장비는 직접 들어야 하고, 장비는 직접 세팅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무거우니까 무겁다고 하고, 어려우니까 어렵다고 하는 게 이런 타박까지 들을 일인가 싶을 때 처음 스노보드 장비를 사러 갔던 보드숍 사장의 말이 생각났다. 


스노보드에 입문할 거라며 장비를 둘러보던 나를 보드숍 사장은 위에서 아래로 훑어본 후 이내 ‘슬로프에 그냥 누워있으면 되겠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의 뜻을 몇 주가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여자 스노보더 인구는 남자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존재만으로 귀한 존재이며 '너 정도의 외모면 슬로프에 넘어져 누워있는 것만으로 남자들이 와서 말을 건네는 건 물론 보드도 알려주고 데크도 들어주고 장비도 세팅해 줄 거'라는 얘기다. 


동호회 활동을 해 본 적 없는 내게는 생소했지만 ‘여왕벌’ 문화라는 게 그들 사이에는 있었다. 무리 내 홍일점이 주목을 받고, 떠받들어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그런 문화 말이다. 동호회 활동을 오래 하며 이런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 마치 실제하는 게 아닐까 싶은)‘여왕벌 방지 위원회’ 같은 게 작동하게 되고, 이들은 나처럼 동호회 활동을 처음 하는 사람이 여왕벌이 되지 않기 위해 교육 아닌 교육을 하는 거였다. 나야 그런 게 있든 말든 알게 뭐람. 


대학생 때부터 여초 집단에서만 있던 내게 여성이라는 특별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지난여름 틴더 (마이
)붐이 끝난 후로는 딱히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본 스노보드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스키장에 가는 날이면 하루에 5~6시간씩 스노보드를 탔다. 그보다 더 오래 타는 날도 있었다. 아직 초보라 멋진 라이딩을 하기는커녕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슬로프를 내려오는 게 전부였지만 내 생에 이렇게나 재미있던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져들어 있었다. 일과 상관없는 활동을 하는 게 몇 년 만인지. 스노보드를 많이 탄다고, 잘 탄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즐거움이란 감정을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듯 했다. 어제는 되지 않던 턴이 오늘 성공되면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이 차곡차곡 쌓였고, 더 잘하고 싶어졌다. 운동이란 몸매를 가꾸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내 허벅지 근육의 기능과 성능을 확인했다. 지금껏 ‘옷을 입기 위한’ 몸으로만 살았었다. 스노보드를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기능하는’ 몸으로 살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추운 산속에서 스노보드를 몇 시간 동안 타고난 후에는 단 것이 당긴다. 그럴 때 편의점 문을 열면 달짝지근하게 붙어오는 군고구마 냄새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다. 그때 뜨끈한 군고구마에 차가운 우유를 마시면 몸속 신경 하나하나가 충족되는 기분이 된다. 속을 채웠으니 다시 스노보드를 타러 슬로프로 나간다. 군고구마의 껍질은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던 끝도 없는 허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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