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우리집 창문의 창살이 싫었던 때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시는 부모님, 동생과 나. 네 가족이 붙어 자던 작은 방보다도 그 창살이 우리집의 가난을 말해주는 것 같았고, 창살 사이로 밖을 볼 때면 나는 그 가난에 갇혀 지내야 한다고 확인 사살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창살을 뗄 수 없는 이유도 너무 명확히 알았다. 가난한 다가구 주택의 단칸방에도 도둑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온통 뒤죽박죽인 방을 혼자 먼저 마주하는 것은 열 살 남짓 어린이에게는 큰 공포였다. 좀 크고 나서는 도둑이 들어도 태연한 척 엄마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단칸 셋방에서 반지하 월세 빌라로, 그리고 낡은 전세 주택으로. 몇 번 이사를 다녔어도 우리집 창문에는 항상 창살이 있었다. 점점 창살이 있는 게 별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스무살이 넘어 골목길을 걷는 나는 그 창살들을 마냥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나를 가두는 것은 창살이나 가난보다는 나 스스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건축을 공부하며 조금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도 한 몫을 했다.
오래되고 작은 집에는 그 집 나름의 개성 있는 면면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집의 창살은 차단과 보호의 역할 외에도 미감을 뽐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각각의 얼굴로 동네의 풍경을 만들고, 때로 특정 시대의 감각을 품어 전해준다. 화수동을 포함한 인천 원도심 집들의 창살은 꼬인 철사줄부터 하트, 나뭇잎, 꽃처럼 보이는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진이나 글로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고 허름해도. 지켜내고 싶었을 작은 방과 네 가족의 온기를 알기 때문에. 나는 낡고 작은 집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2023년 6월 2일
조금은 흐린 날에
어린 날의 기억을 눌러 담아.
진진 씀.
여름의 더위와 비를 핑계삼아 6월에 쓴 글을 한달이 넘어 7월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한달에 한편의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달에도 꼭 한편을 써 올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직은 긴 글을 쓰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나봐요. 매번 '쓸만큼 썼다!' 하는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고 나면 반페이지 남짓한 분량이더라고요. 어쩌면 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연습이 그정도에 그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제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생각을 미숙하게나마 적어 올립니다.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