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 다도 클럽 이야기
코로나의 여파로 한동안 쉬었던 가정집 다도클럽이 재개되었다. 3주 동안 매주 월요일 아침은 차를 마시며 보냈는데, 다도클럽이 중단되며 그 즐거움이 사라지자 차가 고팠다. 유난히 머리가 무겁거나 생각이 많은 날은 티백차라도 마셔야 했다. 따뜻한 물로 찻잔을 데우며 물소리를 듣고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도 저절로 차분해졌다. 알게모르게 내 몸과 마음이 차의 약효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다도클럽 멤버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차도 고팠지만, 이렇게 도란도란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반가운게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번 차 모임에서는 '중국차'를 배웠다.
"차 한잔 할래요?" 흔히들 대화를 나누거나 약속을 잡을 때 하는 말이다. 지금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해 너도 나도 즐겨마시는 차. 이 차를 처음 마신 건 누구일까? 차의 기원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신농(神農)설'이다. 기원전 2737년 무렵 중국의 신농 황제가 여러 나뭇잎을 맛보던 중 독소를 섭취하였는데, 차잎을 먹고 약효를 보았다는 설로부터 인류가 처음 차를 마시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차는 당, 송, 원, 명, 청 시대를 거치며 유럽과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서는 원광법사, 의상대사, 원효대사와 같은 승려들에 의해 계승되며 점차 대중화되었다.
이 날은 10대 명차 중 하나로 꼽히는 '서호용정'과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보이차', 찻잎이 동양의 미인을 닮았다는 '동방미인' 세 가지를 마셨다. 매 회마다 선생님의 다기 도구들을 보며 감탄했는데, 이번 회차에는 특히나 더 그랬다. 선생님께서는 여행용 다기 세트를 꺼내 보여주셨는데, 작은 대나무 상자 안에 투명개완과 작은 찻잔이 들어있었다. 여행을 다니며 소소하게 들고 다닐 수 있으나 구색은 모두 갖춘 훌륭한 한 세트였다. 특히 차테이블, 보관함, 폐수함을 모두 겸하는 상자가 아주 탐이났다. 대나무 상자의 뚜껑에는 대나무 모양의 홈이 나있어서 버리는 물을 그 홈으로 흘려보낸다. 선생님께서 물을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며, 여행지에서 이런 운치를 즐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작은 찻잔을 사용하고(좋은 차일 수록 작은 잔에 따라 한모금에 그 향과 맛을 즐긴다), 봉황이 머리를 세번 조아낸다는 뜻의 '봉황삼점두법'이라는 다예법이 있을 정도로 예술적인 동작을 많이 사용한다. 중국 무술 영화에서 많이 보았을 그 모습이 마냥 과장된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투명개완에 담긴 찻잎이 물을 만나 점점 물을 머금고 가라 앉는 것을 보자니 재미있기도 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캠핑에 불멍, 물고기 키우기에 물멍이 있다면, 차마시기에는 잎멍이 있는 것 같다. 점점 불어나는 찻잎과 색이 변하는 물을 보고 있자면 온갖 상념이 사라진다.
'서호용정'은 중국의 3대 경국지색 중 한명으로 꼽히는 서시의 무덤과 인접한 서호에서 난 녹차(용정차)라고 하여 그 이름이 붙었다. 녹차 특유의 맑고 싱그러운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알려진 '보이차'는 발효과정을 거치는 숙차이다. 보이차는 본래 홍콩의 기후에서 오랜시간 동안 발효를 하며 만들기 때문에,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효소 중 인체에 유해한 효소를 씻어내기 위해 여러번 차를 물에 헹궈내는 세차(윤차)과정을 거친 뒤 우려낸다. 발효차는 그 색이 붉은빛, 갈홍색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발효되며 생겨나는 태아루비긴과 같은 성분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차를 마시고 취하기도 하고, 체하기도 할 수 있어요. 많은 차를 접하며 자신의 몸에 맞는 차를 찾아보길 권해요."라고 말씀하셨다. 약효를 지닌 차도 마시는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약이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발효차를 마시면 유난히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 약하게 취한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선생님의 말을 듣고 발효차에 민감한 체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마신 차는 찻잎이 동방의 미인과 같다 하여 이름붙여진 '동방미인'이다. 동방미인은 대만의 청차로 노란색을 띈다.
나의 다도클럽 짝꿍인 행자선생님께서는 동방미인 "찻잎이 마치 한복의 깃과 같다."고 하시며 "참, 누가 이렇게 곱게 따서 여기까지 왔을까요."라고 말씀하셨다. 망가지지 않은 찻잎을 바라보며 그 차가 지나왔을 과정을 생각하는 행자선생님의 혜안에 감탄했다. 내가 마시고 먹는 것이 거쳐온 과정을 생각하고 나에게 맞는 것을 분별해 내는 것은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는 참으로 쉽고 확실한 건강 비법이라 할 수 있겠다.